- 우리의 여정
전시 시작일 하루 전, 자리에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고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아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데, 그날은 유독 더 많은 생각이 물밀 듯 밀려왔다.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이 어설픈 미소를 띠며 마지못해 받는 존재가 되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단 하나의 마음이라도 편안해지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조금 더 욕심이 났다. 한 명만 더 오셨으면, 좀 더 많이 오셨으면, 내 글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간밤에 잠을 설쳤는데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직 새벽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조금 서늘해진 방 공기를 느끼며 잠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제의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정신은 또렷해졌다. 간밤의 걱정과 불안을 걷어내고 내가 기대하고 있는 순간을 대면하기 위해 이불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떠나는 여름이 아쉬운 듯 연일 쏟아지는 가을비를 걱정했는데, 전시를 시작하는 날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날씨 운이 따라줬다고 좋아하며 갤러리와 가까워질수록 설레는 마음이 커졌다. 바람에 날려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가을 햇볕을 받으며 걸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평온한 시간을 누렸다.
그림과 수필이 어우러진 전시는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도 전시를 어떻게 구상하면 좋을지 참고할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으니, 우리의 전시를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 않게 다가가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도 관객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설명보다는 마음으로 먼저 느끼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 걸음이 느려진 나를, 관장님이 일찌감치 알아보고 밖으로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서 둘러 보라고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셔서 편안하게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전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아직 이른 시간, 고요한 전시장에 홀로 서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 패브릭이 흔들리며 글과 그림이 물결치듯 춤추고,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 아련하게 울렸다.
그의 그림을 쭉 둘러보며 한 바퀴 돌고, 다시 전시장을 가로질러서 패브릭 포스터에 적힌 글귀를 찬찬히 눈으로 읽으며 걸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나를 따라다녔던 생각. 내가 할 수 있을까, 사람들도 공감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의 그림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데 해낼 수 있을까. 그 많은 생각과 고민이 모여 다듬어지고 정리되어 내 눈앞에서 하늘하늘 춤추고 있었다.
작업하면서 느꼈던 걱정과 불안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우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자신의 여정을 묵묵히 이어나가고 있을 모두를 응원하고 싶었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며 회복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훌훌 털고 일어나서 자신의 속도로 명랑하게 걸어가기를.
개츠비의 말이 떠올랐다. 힘든 고난 속에서도, 과거에 끊임없이 떠밀려가도,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전시는 끝나지만, 우리는 안다. 이게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