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자주, 같이 밥 먹읍시다
새해를 맞이해 만두를 빚었다. 해마다 빚는 건 아니고, 코로나로 인해 연말연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우리.. 심심한데 만두나 빚어볼까?
만두피를 직접 밀 생각이 아니라면 만두 만들기의 난이도는 낮아진다. 요즘은 만두피를 마트에서 팔기 때문이다. 만두 소만 만들어주면 된다. 우선,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둔다. 당면은 불려 적당한 사이즈로 썰어두고 당근과 양파도 잘게 다져 섞는다. 두부는 면포에 싸 물기를 꼭 짜 으깨 준비하고 부추도 손질해 잘게 잘게 썰어둔다. 버섯도 좋고 김치도 좋다. 좋아하는 재료들을 다져 넣는다. 물기가 많은 재료는 피해야 한다. 매운 게 좋다면 청양고추를 한두 개 다져 넣어도 맛있다. 준비한 재료들을 넣고 찰기 있게 치대주면 만두소가 완성된다.
사람이 많으니 종류도 많아졌다. 선호하는 재료에 따라 만들고 싶은 만두도 달라 결국 우리는 세 가지 소를 준비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아빠의 새우만두소, 고기를 좋아하는 동생의 고기만두소, 요즘 나의 관심사를 반영한, 야채를 넣어 만드는 야채만두소.
네 명이서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손에 만두피를 올리고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을 묻힌다. 만두소를 크게 한 숟가락 퍼 만두피 위에 가득 올리고 다독여 모양을 잡는다. 가장자리 남은 만두피를 서로 잘 접어 만두를 완성한다.(이때 만두소는 한가득 넣는 게 좋다. 적게 넣으면 쪘을 때 만두가 흐물어져 쭉정이처럼 된다.)
어릴 적엔 명절, 친척들이 모이면 집안 행사처럼 종종 송편도 만두도 빚었었다. 집안의 아이들이 다 크고 난 뒤엔 그럴 일이 없어져 (만두는커녕 다 같이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다. 아아 바쁜 현대인들이여) 크고 난 뒤엔 처음 빚는 만두였다. 재밌네 이거. 조금씩 만두 빚는데 진심이 됐다. 4명이서 누가 잘 빚나 내기하듯 만두에 정성을 쏟았다. 엄마가 가장 잘 빚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복병이었다. 아빠 만두가 가장 탐스럽고 볼록했으며 단아했다. 누가 봐도 1등, 오늘의 MVP였다.
울 아버지, 만두가 단단히 마음에 드셨네 드셨어. 아빠는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만두를 찍으셨고, 만두를 옮겨서도 사진을 찍으셨고, 만두랑도 같이 사진을 찍으셨다. 우리 집 단톡방에 사진을 올려 자랑도 하셨다. 매번 가장 뒤에 계시고 양보하셨던 아버지의 오랜만에 보는 신난 모습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야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유독 힘이 드는 날이면, 절로 부모님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하고 단단한지를 알게 되었다. 버티고 또 버티셨을 거다. 나는 내 몸뚱이 하나 먹이고 재우는데도 이렇게나 버거운데, 아버지는 오죽하셨을까. 일하기 싫은 날도 있었을 거고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은 날도 있으셨을 거고 허탈해 주저앉고 싶은 날도 있었을거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고 또 다잡으셨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조금 서글프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마음속 깊이 내려두고 사셨을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실없이 웃는다. 그러다 문득 아빠와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드물다는 걸 깨닫는다. 아빠의 일상은 어떻더라. 요즘 아빠의 관심사는 무엇이더라. 아... 아빠 큰 딸은 이렇게나 아빠한테 관심이 없었나 보다.
만두를 먹으며 다짐한다. 올해는 더 자주 함께 밥 먹고, 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더 많이 함께 웃으며, 아빠 엄마가 우리 삼 남매 걱정은 조금 적게 하시고 하고 싶었던 일들은 더 많이 해보시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 식구 올 한 해도 웃을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