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흘러가는 걸 느끼는 맛있는 방법
올 해는 현미로 가래떡을 뽑았다. 소금도 적게 넣었단다. 이름도 거창한 현미저염가래떡. 갓 나온 떡을 가위로 툭 끊어 먹으면 말랑하고 쫀득하니 참 맛있다. 슴슴한데 이게 또 입에 짝 붙는 맛이 있어, 하나고 둘이고 계속 들어간다. 한 줄은 그냥 먹고 또 한 줄은 꿀을 찍어 먹고 또 한 줄은 김에 싸 양념장을 콕 찍어 먹는다. 구워 먹어도 맛있고 썰어 먹어도 맛있고 떢볶이로도 떡국으로도 참 맛있는, 내 사랑 가래떡.
저 멀리 경북 성주군엔 할아버지와 아버지 밭이 있다. 가을이 끝날 무렵 보내오는 쌀로 우리는 해마다 가래떡을 뽑아 겨울을 보낸다. 햅쌀이 도착하고 가래떡을 뽑으면 한 해가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 든다. 곡식이 땅에 심기고 크고 영글고 수확되고, 쌀로 끝나는 일 년. 또 한 번 사계절이 돌았구나. 일 년이 지나가는구나. 얘들도 우리도 올 한 해 열심히 살았구나. 떡이 오면 말하지 않아도, 계절이 바뀜을, 한 해가 끝남을 안다.
우리는 해가 바뀌기 전에 꼭 가래떡을 뽑는데, 그래야 그 떡으로 새해 떡국을 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떡을 먹을 만큼 먹은 후 차가운 뒷베란다나 냉장고에 하루 정도 두면 떡이 살짝 꾸들하게 마르는데, 그때 칼로 떡을 쫑쫑 썰어준다. 반달 모양은 떡볶이떡, 원형으로 얇게 썬 건 떡국떡. 몇 줄은 썰지 않고 말아 둔다. 팬에 구워 먹을 가래떡은 썰지 않고 둥글어야 더 맛있으니깐. 떡을 소분해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1월 1일 날이 밝으면 그 떡으로 새 해 첫 끼니를 준비한다. 땅의 기운을 가득 담은 햅쌀로 새 해를 맞이한다.
그러고보면 엄마는 겨울엔 시금치를, 봄엔 쑥을, 가을엔 밤을, 계절마다 계절의 에너지를 담은 식재료들을 식탁에 올리셨다. 봄, 땅두릅이 나오는 그 짧은 찰나를 놓칠까 자주 시장엘 나가셨고 살구가 나오는 시기엔 재바르게 살구를 사 오셨다. 동짓날엔 하루 종일 불 앞에 서서 팥죽을 끓이셨고 무더운 여름 복날에도 거뜬히 뜨거운 삼계탕을 내어주셨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이룬다', '먹는 것엔 힘이 있다'는 엄마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깊게 새겨진다. 해마다의 그 가래떡엔 좋은 것만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과 한 해 열심히 자랐던 쌀의 에너지가 가득해 그렇게나 맛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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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천천히 그러나 하루하루 올곧게 나아가고 변화한다. 수십 수만가지의 식물과 동물들이 자연에 맞춰, 계절에 맞춰 크고 자란다. (날씨와 계절보다 달력을 더 의지하는 건 인간 뿐이죠.) 자연이 키워낸 계절의 산물을 챙겨먹는 것. 아마도 가장 상냥하고 건강하게 계절을 알아채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