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 식당>
다들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럼 두 시간만 살 건가.
네, 감독님. 그래도 영화 같은 인생이잖아요. 그래서 영화잖아요. <헤어질 결심>이란 대작을 낳은 박찬욱 감독의 문장이 내 숨을 훅하고 앗아갔다. 숨 쉬듯 살아가는 인생에서 호흡의 속도를 이어가지 못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모순이 있어야 진실한 인생이니까. 원래 삶은 그런 모순덩어리로 이어져 있으니깐!
가끔은 두 시간으로 압축된 인생을 바란다. 속으로 삼키기가 버거워 내내 입 안에서만 맴도는 쓴맛에 도망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차라리 삼켜야만 그 맛을 지울 수가 있는 걸 알면서도 오기가 생겨 입 안으로 굴리게 된다. 단편적으로 그려낸 영상 속 진행되는 인물의 서사는 꽤 입체적으로 보인다. 비슷하면서도 가까워질 수 없는 삶이라 부러운지도 모른다. 현실이 벅차 어떤 이야기도 곱씹을 수 없을 때, 찬란한 물속에 잠기듯 파묻히고 싶다. 혼란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이를 환기하고자 할 때 가장 단순하고 깔끔한 영화를 꺼내 든다. 식사 후 입 안을 상쾌하게 만드는 박하사탕처럼, 우울할 때 홀리듯 집어 드는 연둣빛 포장지에 감싼 초콜릿처럼. 나만의 냉장고를 열고 볼거리를 골라 든다.
취향은 한결같지 못해 멀리하던 것도 주변을 맴돌 때가 있고, 가까이하던 것도 하루 사이에 나를 떠나가곤 한다. 로맨스를 지긋하게 싫어하던 아이는 커서 현실을 부정하며 주인공의 사랑을 응원하게 됐고, 감성의 결이 다르다며 미리 보기로 흘끗 대던 일본 영화들과 점차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바로 <카모메 식당>이다. 2007년 그때의 감성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고작 9살의 나이지만 놀이터에서 흙을 주워 담던 그 향을 기억하고, B급 감성이라고 부류를 나누던 것을 기억한다. 하루를 바삐 보내고 집에 들어가 엄마가 해준 카레를 먹을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이, 누군가 해준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아주 제-일 맛있다.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삐져나오듯 자리 잡은 카모메 식당.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공간에서 낯선 음식으로 삶을 찾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짧은 시간 내로 모든 서사를 풀어낼 순 없지만 그러므로 족하다. 더 많이 상상하고 더 많이 음미할 수 있으니까. 그곳엔 처음 밟은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이들이 존재한다. 식당의 주인 사치에와 미도리가 친해진 이유는 딱 하나였다. ‘갓챠맨’. 사치에의 혀끝에서 뱅글뱅글 맴돌던 가사를 미도리가 완성시켰다. 그 이유로 카모메 식당을 사랑하기 충분했다. 누구에겐 이해될 수 없는 단순함이 삶의 복잡함을 풀어낸다. 세상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돈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베개를 모로 베고 눈에서 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마저 짧은 시간 동안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으니. 괜스레 기분이 들떴다. 어느덧 눈물로 범벅을 이룬 양쪽 뺨이 붉어졌다. 여전히 어리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인생이라 맘에 든다. 그래서 족하다. 족할 수 있어 감사하다. 가끔은 혀끝에서 맴도는 문장을 완성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족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