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우내 Feb 20. 2023

10

1년을 한 밤으로 치면 우린 고작 열 밤 떨어져 있던 거야



# 17의 여름


얼굴을 마주할 자신은 없어서.

이렇게 문 앞에서 말하는 거라 조금 미안하다.

지금은 당신의 밤들이 안온한지 조금 궁금해.

여태 밤에 앓느라 제대로 잠들지 못했었잖아. 안녕해?



 내 불행의 시작을 당신이라고 생각했어.
 철없고 조금 반항적이고 어리석었어.
 다시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움이 쌓여 방문을 걸어 잠근 것 같아.
 내가 제일 아끼던 슈퍼맨이 망가진 게 슬프면서도 원망스러웠거든.
 그렇게 차츰차츰 당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쌓아가다가
 새벽녘, 일기를 하나 썼었어.
 부러 당신 보라는 듯이 자랑스럽게 펼쳐 뒀었지.
 아침이 돼서 그걸 내 방을 찾은 당신의 말,
 그때 눈을 가늘게 뜨고 자는 척하던 내 등 뒤로 당신이 뱉었던 말이 아직도 꿈에 가끔 나와.

 깊은 후회는 이미  색이 많이 바랬어.
 미움도 증오도 잔재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당신 얘기를 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건 왜일까.


 그렇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내 안에 가두기 시작했어.

 내가 만든 이 방은 너무 어둡고, 스산해.
 내가 걸어 잠근 문이었지만, 열릴 생각도 않네.
 나갈 방법을 알아가는 중이야.
 이 방에서 나가게 된다면, 그땐 뭐든 용서한다고 안아 줄래? 부탁이야.





# 27의 여름


열이 많아 여름을 힘들어했던 내게, 여름을 좋아하는 말미를 준 유일한 사람.

세차하러 갈 때면 엄마와 언니 몰래 둘이서만 먹던 팥빙수 맛이 어떤 건지

땀으로 적신 심부름의 달콤함을 비밀스러운 낙으로 선물해 준 내 아빠.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을 처음 조우했던 날.

그날 당신이 세로로 정성껏 적어 내려 간 편지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딸로 태어난 게 아쉬웠던 것 같아.
모든 일상을 함께 하기엔 딸보단 아들이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랬던 걸까.

가족의 만류에도 당신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 그게 아들이었든 딸이었든

나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아이를 잘못 받아 몇 명이 죽어나갔던 그 병원, 나도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야.

숨을 쉬지 않아 급히 옮겨져 우리의 첫 눈맞춤은 당신의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 안에서였어.

그럼에도, 난 당신 덕분에 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어.


아빠,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던 아들은 아니었지만
하루는 고집스럽게 집에서 때를 불리고 목욕을 하겠다고 버틴 덕분에 
잔소리하며 등을 밀어줄 수 있었던, 흔치 않은 딸내미가 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했어.

투병하는 동안 언니에게도 주지 않았던 당신의 소변통을 내게 직접 맡겨 주었던 것도.

당신이 날 편히 생각하고 의지했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억울하지 않더라.


 내 키가 130cm 언저리도 안 됐을 당시 당신이 현장에서 갖고 온

 내 몸집만 한 바퀴의 자전거를 어떻게든 타보겠다고 했었지.

 발도 닿지 않는 자전거를 악바리로 배우다 보니 금세 늘었어.

 당신의 투병 기간 동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먼 학교로 배정받았을 때도

 직접 운전해서 학교까지 같이 가 준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어.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통학하던 당시 유행하던 자전거 통학에

 친구들과 다른 게 싫어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졸랐을 때도

 군말 없이 내게 자그마한 자전거를 선물해 준 덕분에

 친구들과 어렵지 않게 어울리며 학교까지 등하교를 할 수 있었어.


어릴 때, 주말 아침이면 항상 팔다리를 털어 주며 스트레칭해 주고,

기지개 펴 주며 놀리듯 잠을 깨워 준 덕분에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 아침이 항상 행복했다고 느끼던 때도 있었네.

 당신이 자동차를 좋아했기에 어린 내가

 당신과 대화 나누고 싶어 차종을 꿰려 안달이었던 것까지도.

 아파트 단지에서 아주 잠시나마 운전석이 앉히고

 핸들에서 발을 떼 보라며 봐 주던 초등학생 때가

 당신이 가르쳐 준 처음이자 마지막 운전일 줄이야.
 스무 살이 되자마자 면허 따기로 했던 약속은

 이제는 비어 버린 당신의 자리에 자주 사무쳤지만

 별 어려움 없이 지켜낼 수 있었어.


 항상 요 앞 슈퍼를 갈 때도 날 끼고 데리고 다녔잖아.
 바람이 시원하던 가을 밤, 아이스크림 봉투를 들고 언덕을 내려올 때

 당신이 장난스럽게 손에 낀 깍지에 힘을 줘 아파했던 게 기억이 나.
 똑같이 힘을 주면서 이겨먹겠다고 아등바등이었지.
 아빠가 그때 손에 쥐어 준 첫 번째 아픔에

 난 아빠 없이도 세상을 무던히 살아가는 악력이 생겼어.
 하다못해 고등학교 체력검사 때 악력이 좋게 나온 것도

 당신 덕분인 것 같아 속으로 고마워했어.


 어릴 땐 당신을 닮았다고 하는 말이 너무 싫었어.
 당신의 모두에게 마냥 사람 좋은 멍청함,

 약간의 대책 없는 허세,

 좋게 말하면 당신만의 처세술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들.
 다 내가 타고난 것 같았거든.
 부정했음에도 피부색은 엄마를 닮아 환했지만 피부결은 당신이랑 같았고.
 엄마를 닮아 손이 길었음에도 새끼손가락이 안쪽으로 휘어져있는 건

 당신 손과 꼭 닮았다고 엄마가 얘기해 주더라.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들이 어디로 온데간데 사라졌다가 이제야 찾아온 건지.
 있을 때 잘하라는 말, 나처럼 뼈저리게 느꼈던 열일곱 또 누가 있나 나와 보라고 그래.

 당신을 잊고 싶지 않아서 당신의 태어난 날을 내 주변 곳곳에 숫자로 남겨 매번 조우해.


 그래도 고마워.
 다른 사람에겐 엄격했어도, 우리에겐 다정히 대해 줘서.
 아파서 힘든 와중에도 우리한테만큼은 짜증 많이 안 내려고 노력해 줘서.
 암이 온몸에 퍼져 다리를 잘 쓸 수 없었음에도

 팥빙수를 사 주던 때처럼 나만 데리고 가

 내 인생의 첫 선짓국을 먹어 볼 수 있게 해 줘서.
 간병인을 안 쓴 것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지만

 방학 때 학교에서 자습할 시간에 당신과 땡땡이치듯 

 같이 시간 많이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
 당신의 부재로부터 하루빨리 일상으로 빨리 복귀하라고

 3개월 시한부 선고에도 1년 넘게 잘 버티다 내 개학식 전날 곁을 떠난 것도.

 당신이 떠나던 날, 참아오던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떠나 줘서.

 그렇게 발인 후에 비가 돼서라도 우리랑 같이 펑펑 울어 줘서.
 너무 고마워.
 당신은 항상 우리 곁에서 함께 하려고 했었네.


 난 사실 나이 든 아빠의 모습이 멋질 것 같아서 내심 많이 기대했었는데.

 우리의 첫 가족사진은 사실 아빠의 영정사진 명목 하에 찍으러 갔던 거였지만

 아빠의 고집 때문에 장례식 때부터 매년 제사 때마다 흐릿한 잔상 같은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아.

 거긴 어때, 아빠.
 아프지 않고 편안해?
 아픔 잊고 산 지 10년 정도 됐으니까 이젠 내 꿈에도 한 번쯤 나와 줘.
 아빠랑 너무 닮아 살아가는 내내 당신을 더 많이 곱씹을 수밖에 없는

 둘째한테 더 자주 마음 써 줘야지.
 보고 싶네.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못해 준 거 미안했어.
 기회가 생기면 얼굴 보고 말해 줄게.
 다음 생엔 더 오래 곁에 있어 주라,
 아, 그때는 이번 생에 다하지 못했던 아빠의 소임 끝까지 완수해 주고.
 다음 여름에 아빠를 찾아갈 땐 아빠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운전대 잡은 모습으로
 녹지 않게 팥빙수 하나 사서 갈게.

 미안하고, 고마웠어. 다음 생에도 내 아빠 해 줘.





매거진의 이전글 09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