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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Nov 04. 2024

보람을 느끼는 일

소로식 삶

내가 생각하는 일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얼마 전에 읽은 아티클을 함께 소개해 볼까 한다.

"일터의 소로" 라는 책에 대한 소개, 감상평을 간단하게 소개한 글이었는데 읽으며 공감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 봤다.


'나의 직업에서의 성공을 위해?'

'돈과 명예를 위해?'


표면적인 답만 즐비했다. 


쉼없이 일하면서도 '진짜 일'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반성하며 잠시 상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버는 급여의 대가는 무엇일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매 시간이 나의 급여의 결과물일 것이다. 

나는 본질적인 나의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이직을 감행했다. 주변에 직업을 3-4번 바꾸는 사람도 있는데 고작 한 번 갖고 무엇이 대수겠냐며.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문제였다.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으니 스스로를 옭아맸다. 이미 하고 싶지 않은 일에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니 남들보다 3배 뒤쳐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를 쫓아오는 시간 탓에 1년의 시간을 내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살아왔다. 내가 정말로 이직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려웠기에 불안은 매일 나를 덮쳤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소외시키고 싸우면서 단단해지기를 1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직을 성공했고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삶과 자기 인생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삶 사이에는 차이가, 확실한 간극이 있다. 현대 삶의 정신없는 바쁨을 인생살이라는 본질적인 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이 귀중한 이유는 덧없고 찰나적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막연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기' 가 아니었을까.

목표를 이루어내고 나니 갑자기 허한 기분이 들었다. 초연하게 행동하자.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는 있는데, 이 일을 정말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 였다. 1년의 기간 동안 실무를 경험했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사용자를 위한 문제를 해결하며 직업의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회사 내 프로세스도 없고, 디자이너도 나 하나고, 한창 바쁜 시기를 제외하면 그닥 어렵지 않게 월루가 가능한 이 회사는, 내가 성장할 수 없는 회사라는 것을 이미 수습 3개월만에 깨달았다. 


하지만 당장 이직이 가능할 리 만무했고 3개월짜리 경험은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그때부터 1인 디자이너로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 컨퍼런스를 찾아다니고, 닥치는대로 네트워킹이나 웨비나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많은 걸 배우고 싶어 성장에 갈증이 났다. 흔하지 않은 타겟인 '장애인' '사회적 약자' 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로 그들을 위한 유의미한 사용성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사용자가 평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비슷한 서비스에서 어떤 부분을 필요로 했는지, 일상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어떤 것인지, 등등 사용자와 도메인을 이해해야 했다. 시각장애인 중 전맹과 저시력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그런 차이를 UX에선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 그리고 또다른 타겟인 지체장애인, 휠체어 이용자는 어떤 니즈와 페인포인트가 있는지 분석했다. 시니어의 패턴은 어떠한 양상을 띄는지, 이러한 개선을 진행했음에도 효과적으로 사용성이 늘어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매일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제 정말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 같았다. 시늉은 하고 있으니 뭐라도 되지 않을까 착각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은 재미있다가도 금세 지루해졌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되묻다가 환경의 문제인가 싶어 이직을 고민하게 됐다.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려고 보니 가관이 따로 없었다. 이런 포트폴리오로 어떻게 취직이 가능했던 걸까. 1년 넘게 열정을 갈아넣어 만들었던 자랑스러운 포트폴리오는 한순간에 양산형 포폴로 전락했다. 

마치 알맹이 없는 빚좋은 개살구를 보는 듯했다. 학원은 그냥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켜 줬을 뿐이다. UIUX 반이었지만 UX는 커녕 UI도 모르니 일단 학원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고, 시간이 부족하니 레퍼런스가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우선은 있어 보이고 그럴듯하게 채웠다. 덕분에 UX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다. 고백하건대,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그 흔한 UX 방법론조차 몰랐다.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문제해결은?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인 두 가지의 질문에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어서 나아가야만 했다. 





UX는 어떻게 공부해야 해?


내가 생각하는 UX는 데이터 기반으로 사용성을 예측, 파악하고 현재 서비스의 문제점이나 VOC 등을 파악하여 더 나은 사용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사용자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사내 서비스는 다섯 개가 넘게 있었으나 서비스 기획자가 없어 매번 개발팀에서 주먹구구식 기획을 담당했다. 그 중 이전에 모든 디자이너가 기획을 맡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디자이너인 내가 기획을 전담하게 되었다. 물론 욕심이 많은 나는 기획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기획을 하려면 데이터를 뽑아서 정량적인 지표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앱을 사용하는 유저가 부족해 지표화할만한 데이터가 없었다. (이게 스타트업의 현실이겠지.)


하다 못해 클릭율이나 유저 패턴 트레킹이라도 해 보려고 하니 앱내 심어 놓은 트레킹 코드가 없어 그마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전 디자이너분들 중에 요구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당장 문제점을 개선은 해야 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허망할 정도로. 이러면서 정부사업지원금은 어떻게 턱턱 따내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달리 뭘 시도해 볼 방법이 없어 이전에 했던 유저테스트 기록지를 전부 다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서 UIUX 실무에 계신 시니어들의 책을 찾아보거나, 디자이너 필수정독서 같은 것들을 찾아서 읽었다. 사용자와 서비스 파악,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물경력이 될 것 같아 너무 두려웠다. 이 회사에서 하나라도 건져갈 수 있을까? 조바심이 많이 났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투성이 상황에서도 이전 직장에 대한 그리움은 추호도 없었다. 훨씬 보람차고 나와 결이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자체는 너무 재미있었다. 주변에서 상담을 해 오더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 공감해 주고 경청하기를 좋아하는 내 천성은 사용자를 진심으로 공감해야 하는 이 일과 잘 맞아떨어졌고 더불어 사용자가 겪는 문제가 어느 정도 쉽게 풀렸을 때, 그래서 좋은 피드백을 들었을 때의 뿌듯함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눈도 보이지 않는 장애인 이용자분이 그래도 버튼이 커지고 색상이 잘 보여서 쓰기 훨씬 편하긴 해요. 라는 사소한 칭찬에도 나는 고래마냥 춤을 추기 바빴으니까. 역시, 디자인이 맞다. 프로덕트를 개선하고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을 해나가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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