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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Mar 26. 2023

잠 없는 꿈

우울의 시작

새벽 3:23


가만히 눈을 떴다.
 다시 감는다.


시계의 시침, 분침, 초침 소리만 적막한 방안을 가득 매우니 방안이 커다란 시계가 된 것 같다.

그 소리는 지나칠 만큼 크게 느껴져 내 뇌까리에 큰 잡음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내가 시계의 분침 정도는 된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똑, 딱, 똑, 딱, 심장도 쿵, 쾅, 쿵, 쾅’


심장이 꼭 귀에서 뛰는 것 같았다. 어질 한 느낌에 몸을 일으킨다.

근래에 더위를 잦게 느끼는 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후덥 한 방안 공기를 밀어내듯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내 곁에 잠든 너를 가만히 바라본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시계 소리와 화음을 만들어낸다.


'사랑 버프 장난 없네, 소음이 화음이 되는 매직.'

혼자만의 생각으로 곱씹다가 어이가 없어 살풋 웃고 말았다.

새벽에 잠도 못 자고 뒤척이면서 낄낄대는 꼬라지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서둘러 웃음을 거뒀다.



[10분 후]

새벽에 깰 때마다 주문처럼 생각하는 잡념들이 빳빳한 눈두덩이 위로 하나씩 고개를 내민다.

본인과 함께 오래도록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는 듯 졸라대는 꼴이 우스웠다.

생각을 멈춘다는 건 애초에 내 뇌의 체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포기한 지 오래기에

답답한 마음에 머릿속으로 들푸른 초원에 뛰노는 양들을 상상해 본다.

허들을 넘는 양을 한 마리씩 세어가며 잠을 청하려 무진 애를 써 보지만.


‘아, 애초에 양 한 마리씩 세는 건 우리나라 정서랑은 안 맞는다며.’


되지도 않는 개수작이었던 거다. 스스로가 한심해 피로함에 볼멘소리를 내지만,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계절 탓일까. 곧잘 잠을 설치는 탓에 이제는 이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침대는 날 옥죄는 감옥 같고, 베개는 날 옭아매는 쇠사슬 같다.


편할 날 없는 싱숭생숭한 마음에 속으로 작게 앓는다.





[48분 후]

팔을 들어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다. 빠득. 어깨에 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요새 어깨까지 말썽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

뼈에서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고 있으나, 벌써 그런 소리랑 친하게 지낼 짬밥은 아닌 것 같은데.


어깨를 쉬이 돌려가며 공허함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타다닥. 이렇게 외롭고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새벽에 SNS 보면 안 되는데.

알면서도 하지 말라는 건 꼭 하는 의지의 한국인. 눈동자에 허여멀건한 화면이 담겨 시시각각 움직이는 모양새가 제법 이질적이다.

인스타는 항상 행복만을 추구하는 모토라도 있는 걸까. 죄다 행복한 순간순간을 기록하듯 올리는 게 부러우면서도 배알이 꼴려 눈살을 찌푸렸다.


나름의 묘책이었는데 마음만 뒤숭숭할 뿐, 결국은 극악처방을 써야 하나.





[1시간 13분 후]: 나만의 꿈나라 급행열차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깊다란 물에 외국 영화에 나온 주인공들 마냥 눈을 지그시 감고 그대로 몸을 맡기듯, 마치 물에 물감 풀어내듯 몸을 맡긴다. 목까지 찰랑이는 물에 반짝이는 빛들이 내 몸을 에워싸는데 그러면 모든 게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때만큼은 깊은 물도, 너무 고요하기만 물이 한점 무섭지 않고 오히려 안식을 얻는 기분이었다.
 꼭 그랬다.
 그 순간엔 안락함에 겨우내 느끼던 두꺼운 이불의 따뜻함과 모순된 답답함의 이질감도 곧 사라진다.





그렇게 서서히 깊은 잠에 빠진다.





새벽 5:34


그 형상을 그리면 그래도 곧잘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약발이 떨어졌나. 답답함에 뒤통수만 벅벅 긁는데 이상하게 외로움이 손톱 사이로 삐져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이질감에 손을 탈탈 털어내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잠을 잘 자지 못하니 신경이 곤두선다.

괜히 심란한 마음에 얼마 전에 받았던 진단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 본다.

아메리카노 기프트콘 하나 받겠다고 본가 근처의 보건소에서 우울증 검사, 스트레스 검사, 자존감 검사, 등 등 모두 진행했는데 일부는 상담을 요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세상에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디 있어.

...

근데 죄다 상담 필요한 거면 몸에 좀 문제가 있는 건가.’


이제 와서 스스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태껏 좀먹었던 마음들이 침묵한다.
 내 나이 내일모레 벌써 서른. 늦깎이 방황러 좀 하겠다고 씨게 마음먹고 집까지 박차고 나와 타지에 살고 있으니 오히려 외로움이 사무친다. 이 나이 정도 되면 어른인 줄 알았다. 어른이면 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집 말마따나 어린양 하고 싶지 않았다.

투정도, 어리광도 여유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건데.

누군가에게 너무 의존하지도, 너무 기대지도 않는 선에서 스스로 잘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나를 과대평가한 걸까. 쥐약 같은 외로움과 우울함에 토악질이 난다.

뼛속 사이사이, 근육의 섬유질 한가닥까지 찬바람이 파고든다.
인기척 하나 없는 침묵의 새벽이 속도 모르고 잔잔하니 고요하다.


불면은 곧 숨 막히는 침묵의 증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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