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챠 Oct 13. 2021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이 글에서 인칭대명사는 성별의 구분없이 ‘그’로 통일되어있다. 혼동을 야기할 경우 이름을 함께 병기한다.)의 아버지는 『영국 인명사전』을 펴낸 문예비평가 레즐리 스티븐슨으로 빅토리아왕조 시기 수준 높은 지성인이었다.


버지니아는 그런 아버지로부터 수준 높은 문학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꽤나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행복한 유년시절도 함께 죽어 버리는데, 알려진 바로는 버지니아의 인생 내내 그를 괴롭힌 신경질환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신경질환은 이후 우울증으로 발전했고, 이후 버지니아는 주기적으로 발작을 겪었다. 첫번째 우울증 발작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처음 발작이 있었을 때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지만, 이는 결국 버지니아를 완전한 신경쇠약으로, 그리고 정신이상에 대한 공포로 이끌고 간다.


이때 의사로서, 또는 환자의 감시인으로, 연인으로, 남편으로 버지니아의 곁을 충실하게 지킨 사람은 그의 남편이었다. 그의 남편은 평생에 걸쳐 버지니아를 변함없이 사랑했다.


1941년, 버지니아가 스스로 인생을 끝냈던 것도 자신이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밝히고 있는 바대로 더 이상 사랑하는 남편에게, 일생의 행복을 안겨준 남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사랑하는 남편의 삶을 망가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41년 3월은 버지니아가 새 소설을 완성했던 때였다. 그는 지쳐 있었고 자신의 완성품을 두고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품을 마친 뒤라면 으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럴 때면 정신 이상에 대한 공포감이 더욱 몰려오는 것도 으레 있는 일이었다.


이 와중에 전쟁이 주는 긴장감은 가중되고 있었다. 런던에 쏟아진 폭격은 울프 부부의 집과 서재를 파괴시켰고 그때문에 부부는 거처를 옮긴 때였다. 당시 버지니아는 남편과 사우스 다운즈(South Downs)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곳도 독일의 폭격에서 안전하지는 못한 실정이었다.


겉보기에 버지니아는 이 모든 것을 태연자약하게 받아냈다. 그러나 내면 속으로는 몹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싸움 끝에 결국, 아마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의 남편은 언제나와 같았지만 그로서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남편의 에너지를 앗을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남편을 소진시킬 수는 없었다.


마지막 편지에 쓴 그 말처럼, 그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일”을 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는 3월의 아침, 우즈(Ouses) 강으로 향했고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은 채 강에 몸을 던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화려한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