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 책의 추천사랍시고 수록된 글은 울프의 생각을 너무 단순하게 여성 권리 증진으로 해석해 둔 것 같아 몹시 불만족스러웠다.
이 글의 주제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과 픽션이며, 울프는 무엇보다 이 글에서 스스로 성별을 생각하지 말고 쓰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 길고 무수한 여성 차별의 역사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 분노에 치우치고 성별을 대립적으로 의식할때 자신은 그 자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노하느라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어떤 소리에도 뒤돌아보지도 말고 힘껏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할때 긴 역사에서 여성의 지성이 여성의 기록이 남고 여성이 쓴 픽션이 위대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울프는 요즘만큼 성별을 많이 말하는 시대가 없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성별을 말하는 시대인 것 같고 앞으로 정말 점점 더 성별을 많이 말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러나 오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는 우리 시대에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다) 더 이상 단지 성별 하나에만 근거해 분노하는 일에만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성별 하나만으로 말하기에 인간은 너무 복잡한 존재이고, 인간사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땐 <여성과 픽션>에서 “여성”이 더 많이 보였는데 이번엔 “픽션”이 더 많이 보였다.
진짜 오랜만에 읽은 책이었는데 새로운 의미에서 좋았다. 나한테 울프라는 작가는 조금 견뎌야(?) 재밌어 지는 작가다.
그래도 이번에 일독을 다시 하고서 역시 이 책은 오래 두고 읽으면 또 좋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렇다. 울프가 말하기를, 소설은 작가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담고 있고, 그것을 개개인이 각자 다양하게 받아들이지만, 어떻든 (훌륭한) 작가는 독자에게 이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그 변화무쌍한 수용의 양태가 각기 다르고, 삶이 소설과는 너무나 다르다고 해도 아무튼 저것 역시 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