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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Mar 29. 2022

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데미안』에 관해

이 정도 분량의 작품 중에서 데미안을 능가하는 작품이 있을까? 나는 아직 없는 것 같다. 내게는 없다. 처음 읽었을 때, 두번째 읽었을 때, 세번째, 네번째 읽었을 때 모두 다른 깊이와 감동을 주었던 헤세의 작품.


마지막으로 읽은 건 몇년 전인데, 이때 데미안을 읽으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실존 인물일 뿐만 아니라 어떤 관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



데미안은 그가 바라던 것, 그가 꿈꾸던 것, 그가 되고자 하는 것으로 가는 길잡이로서의 형상일 뿐, 어쩌면 실존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고. 실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삶에서 저런 존재들은 툭 튀어나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인물로서 나오지 않아도 내가 알을 깨고 나오게 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건 알고 지내던 사람의 지나가던 한 마디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등산을 갔을 때 느낀 감격이기도 하고, 끔찍한 상실의 사건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결심이기도 하고.

​​


실제로 프란츠 크로머라는 악당을 없애준 상급자 선배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를 노려보고 경고의 말을 한 것은 싱클레어 자신일 수도 있다고.


우리는 성장을 위해 으레 그런 과정을 겪지 않던가. 그러나 크로머 같은 이가 사라진다고 해서 삶을 썩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 ​


그러니까 어찌 되었건 싱클레어는 방황해야만 한다. 그가 술집에서 방황하고 은둔 속에서 헤매야만 했다. “이 길만 지나면, 이 코너만 돌면 그녀가 올 거야”라고 기다리고 고뇌하고 속삭이던 시간.


그러나 발걸음을 움직일때 그 믿음을 심어준 존재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그게 책일 수도, 실제 사람일 수도, 뭐 아무거나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말미에서 싱클레어는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것이다. 데미안을, 어쩌면 그가 바라던 그 자신을.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내가 바라는 사람이고,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내가 기다려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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