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는 시간
“죽음이 무서운 것은 기억의 집인 육신이 소멸한다는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고, 내가 육신에 집착하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영혼이 있으면 뭐 하나, 육신이 없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알아보나 싶어서이다. 육신에 대한 찬탄 없는 첫사랑의 기쁨을 말한다면 그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다. 서로 끌리고 사랑하여 결혼한 남자에게 내가 그 사람에게 첫눈에 반한 건 근육질의 몸이 아니라 관대하고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노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눈빛, 그 미소가 아니었다면 그런 좋은 심성이 무슨 수로 겉으로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눈빛도 미소도 육신에 속한 게 아니던가. 내 속으로 난 자식도 마찬가지다. 그의 몸이 생겨날 때 나는 게울 것 같은 이물감을 가졌고, 점점 부풀어 심장까지 차오르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죽을 힘을 다해 내 몸으로부터 떼어냈다. 내 몸의 진액을 짜내어도 짜내어도 고 작은 것은 허기져했고, 날마다 포동포동 살이 찌는 내 새끼를 내 손으로 씻기면서 날로 굳세고 아름다워지는 몸을 보면서 느낀 사랑의 기쁨을 무엇에 비길까.”
여러 편의 수필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딱 한 부분, 딱 하나만 고르라고 생각하면 무엇이냐 하고 골라서 옮겨둔다. 고통 속에 육체가 통증을 체감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 같다고 여기곤 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애절히 말해주고 있었달까.
왜 인간에게 육체가 그렇게나 중요한지, 왜 인간이 영혼으로만 혹은 의지로만 머물지 않는지 생각하게 하는 그런 대목이었다고. 그래서 어쩌면 영혼과 마음과 육체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