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행 말로는 “패키지 관광지”같은 곳이었건만 벚꽃이 다 진 뒤에는 그새 다소 한적해져서 (물론 그래도 사람이 많았지만) 걸을만 했다.
이곳은 내가 자주 오는 곳은 아니다. 익숙한 곳도 아니고. 온 것도 손에 꼽는다. 처음 왔던 날이 기억났다. 그때도 나름 어린 나이는 아니었는데 많이 어리숙하고 어렸던 내 모습이 지금과 대별됐다.
어제의 나는 훨씬 편한 모습으로 호수 근처를 걸었고 벤치에 앉아 지리산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잠실에 사는 사람은 이 좋은 곳을 두고도 여기서 러닝은 못 하겠구나 싶었다. 올림픽공원 쪽으로 달리려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보면 나 이제 정말 러너가 되었나봐.
요즘 만나는 사람들과 어쩌다 운동 이야기가 나오면 달리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장난삼아 “나 러너야”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 어쩌면 이 말 하려고 달리기 하나 싶을 정도다.
나는 허세가 그리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허세 없는 삶은 왠지 약간은 시시한 것 같다. 허세가 있어야 그 허풍을 발판 삼아 나아가고 그게 또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나. “나 러너야”라고 계속 말하려면 계속 달려야 한다.
제일 좋았던 풍경은 이거였다.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했던 것. 벤치에 앉아 보는데 나는 호수나 물가보다 이런 모습이 좋아. 역시 바다 같은 것보다는 숲이 좋고 산이 좋아. 여기를 보며 Heart of Darkness를, 지리산을 이야기했다.
무릎 재활운동 열심히 해서 지리산에 반드시 다시 간다. 내 그레고리 베낭 매고. 난 hiker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