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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Jul 14. 2022

사랑할 결심

오늘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내겐 가끔 약을 먹고 먹고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과도하게 진통제를 복용하는 날이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수업이 펑크나고 안좋은 몸으로 카페에서 쉬면서 다음 일정을 생각하다가 신용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기를 그만두고자 약을 더 먹고 일정을 강행했는데 약이 발휘한 효과가 미미한 그런 날이면. 그렇지만 약효가 아예 없지는 않아서 그 덕분에 순간 순간의 즐거움을 느낄 수는 있는 날이면. 그 하루가 인생 전부를 축약한 거라면 삶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날은 밤에 집에 도착해 마지막 진통제를 먹고 조금 누워있자 드디어 약기운이 몸에 완전히 돌아 두통이 사라졌다. 


이날 하루를 두고 “오늘이 내 인생의 전부다”라고 한다면 약간 잔인할까? 아니면 그래도 그건 좋은 일일까? 나는 "There is little water, there is a little water"라는 두 문장을 예로 삼아 화자의 시선이나 태도에 따라 같은 양의 물이 완전히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고 설명하곤 한다. 그런 관점에 따라 말하면 나는, 약효가 조금씩 조금씩은 들었고 덕분에 맛있는 식사도 할 수 있었고 즐거운 영화 관람도 대화도 만남도 했으니 행복한 것 아니었나, 게다가 하루의 마지막은 통증에서 해방되지 않았던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아픈 머리를 이끌고 기껏 첫 일정 갔더니 그게 펑크가 나며, 어떻든 약 먹고 버티었는데 약효가 그리 미미했는가. 그래서 하루 종일 지끈거리고 울리는 머리를 달고 다녔는데 모든 일정이 끝나고서야 두통이 멎느냐, 그것 참 애석하다, 하고. 


지난 주를 돌아 생각하니 지난 주에서 가장 큰 모먼트는 저날이다. 웃긴 건 이 많은 말과 말과 말같은 건 상관 없이 나 사실 저날 행복했다 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면 누워서 마침내 두통에서 해방되었던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돌아보면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깨끗한 머리로 씻을 수 있게 되자 느꼈던 행복감. 많이 아프지 않아서 취소하지 않아도 되었던 약속. 그날 나누었던 대화와 순간들. 언니가 내게 해준 이야기와 우리가 할 수 있었던 대화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와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생각. 이 만남의 신비로움에 대한 생각. 대화 중이었던가 대화 후였던가 모르겠지만 여하간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한 도전 의식도. 내 선택에 대한 믿음과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아갈 길에 대한 생각들. 아직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반성까지도. 



그날이 내게 정말 좋은 날이었다고. 저런 하루가 내 인생이라면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야 하지만 또 그저 정말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그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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