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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Sep 14. 2023

임신과 출산과 남녀 사이

임신과 출산은 확실히 여성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 많고 남성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몹시 적은 것이 사실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아빠가 잘 키울수도 있지만 임신 기간의 경험은 신체적이고 생리적인 문제 상 여성이 감당하는 몫이 크고 출산 후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이야 분유도 좋지만 모유가 아이의 유일한 식량이던 시절에 어머니의 역할이 아버지의 그것과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 여겨진다.

출산 후 급격하게 신체의 변화를 겪는 것도 여성 쪽이고 그에 따른 정신적 변화나 뒤따를 수 있는 우울감을 감당하는 것도 여성 쪽이다.

이렇게 보면 힘든 것 대부분을 여성이 하는 것 같고 출산은 여성 편에서는 확실히 손해인 것 같이 보인다. 누군가는 여성인 쪽만 이런 고생을 하니까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으며 모든 수고와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나 자신의 문제다.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닌가? 이 경험이 고생이기만 한가? 이 수고와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 괴로움 뿐이지 않다. ​


나는 임신 중에도 유난스레 태동에 감격하고 초음파 보며 기뻐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지만, 괴로운 순간이 많아도 그것이 억울할 일은 아니었다. 이 경험이 내 삶의 서사에 녹아들어갈 것이며 이 경험과 나는 분리되지도 않는다. 여기서 얻어가는 것은 나의 것이며 앞으로의 나를 새로이 구성할 것이다. ​


더불어 잊을 수 없다. 거의 고된 중노동 수준의 일을 하던 자영업자 시절의 내 배우자가 하루에 14시간씩(혹은 그 이상) 일을 하면서도 아파 앓아 누운 나를 위해 꼭 아침 일찍 과일 깎아주고 나가던 수고를. 두통과 구토, 입덧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누워있던 나를 돌보던 시간을.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나를 부양하기 위해 하는,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수고에 대해 어떤 불만이나 원망도 하지 않던 것을. ​


어쨌든 나도 임신 9개월까지 일을 하긴 했지만 내 배우자가 느꼈던 무게와 내가 느끼고 짊어진 책임감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 차이는 일부는 신체적인 차이에서 비롯해 만들어진 것이고 또 일부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각자가 경험한 몫은 각자의 삶에 새로운 무게를 더하고 그것이 한 쪽이 더 고생하고 다른 한 쪽은 덜 고생하는 식으로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겪은 힘든 시간과 앞으로 남아있을 시간을 내 배우자는 오롯이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차이와 다름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일. 외롭고 쓸쓸할 수 있는 삶의 영역에서 돌아와 고단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일 것이라고. 그것이 가족이고, 그것이 인생 2막을 함께 걸어가자 다짐한 한 팀으로서의 부부가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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