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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다스리는 나만의 방법

사람과 여우 <이솝우화>를 읽고

by 더센티브

어떤 사람이 자기를 해코지했다는 이유로 여우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는 실컷 앙갚음하려고 여우를 붙잡아 기름에 담갔던 밧줄을 꼬리에 매달고 거기에 불을 붙인 다음 풀어놓았다. 그러나 어떤 신이 그 여우를 풀어놓은 사람의 밭으로 인도했다. 때는 마침 수확기라 그는 울면서 뒤쫓아갔건만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 <이솝우화>


경남 하동으로 첫 발령을 받아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종종 관광버스를 타고 야유회를 갔는데 좁은 버스 안에서 춤추고 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남자직원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조용히 이야기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 볼륨이 높아지고, 급기야는 폭력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직장에서 쌓인 불만을 술자리에서 과격하게 푸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동료들은 그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경계했지만, 나는 신입이라 무방비상태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술을 마시지 않는 자리에서도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실망한 사람에게 계속 실망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심리인 것 같다.


개인택시 하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아침마다 직장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당시에는 '합석'이라는 것이 있었서, 회사 가는 길에 뒷좌석에 다른 손님을 태우는 경우가 90% 이상이었다. 언니는 특히 고객과 계산할 때 긴장감이 감돌았다. 만 원짜리를 내는 손님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화부터 냈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첫 손님인데 만 원짜리 내면 하루 종일 만 원짜리 손님만 온다고” 언니는 얼굴이 붉어지며 화난 목소리를 말했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누구도 언니의 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직장에 도착했다. 언니는 화를 잘 내는 성격 탓에 주위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니의 감정을 풀 수 있도록 더 잘 들어줄 수 있을 텐데. 분명 언니도 자신만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더 힘들었을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조그만 가게를 하셨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외상값 장부를 적어달라고 부탁하시곤 했다. “다리 한쪽 저는 아저씨”“한쪽 눈 짝뻬이 아저씨” 엄마는 이런 식으로 사람의 특징을 말씀하셨다. 나는 한글도 완전히 마스터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사투리가 심한 엄마의 말씀에 자주 짜증을 냈다. “엄마 똑바로 말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럼 엄마는 더 또렷하게 말씀하시려 애쓰셨다. “짝베이 아저씨 보고 짝베이라 하지 뭐라고 하노”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철없던 나는 늘 불만에 가득 차서 한 번도 즐겁게 외상값 장부를 적어본 적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환갑이 된 지금, 철없이 화만 냈던 그때의 나를 반성하며 엄마에게 잘해드리고 싶지만 엄마는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화를 낼 것이 아니라 한 번만 더 웃어드릴걸.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분노를 경험한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혹은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을 때. 이런 순간들이 찾아오면 감정의 홍수에 휩쓸리기 쉽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화가 날 때 예전처럼 버럭 화를 내기보다 아래 3가지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첫째, 화가 날 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분노의 원인이 된 상황을 떠올리며 최대한 자세하게, 빠뜨리는 부분 없이 적어본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 상대방의 말과 행동, 그리고 나의 반응까지, 신기하게도 이렇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감정들이 정리되고,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감정을 밖으로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둘째, 성경책을 읽는다. 성경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지혜와 가르침이 담겨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원수를 대하는 방법, 부모를 공경하는 방식,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우리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말씀들이 가득하다. 분노의 순간에 특히 성경에 의존하는 편이다. 고요히 말씀을 읽으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셋째, 정리를 한다. 옷 정리, 주방 정리는 물론 코너에 있는 어지러운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정리한다. <버리기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무심코 방치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물건이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 평소 하기 힘든 창고 정리를 한다. 집 정리는 기분을 개운하게 하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화를 내고 나면 항상 후회가 따른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내뱉은 말이나 행동들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있다. 첫째, 화난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 둘째, 해코지는 또 다른 해코지를 낳을 뿐이라는 사실. 셋째, 무엇보다 1년 뒤, 3년 뒤에는 그 일이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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