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없는 인간관계
사냥개가 토끼를 잡아 때로는 물고 때로는 볼을 핥았다. 토끼가 지쳐서 말했다. "이보세요, 나를 물지 말든지 아니면 입 맞추지 마세요. 당신이 적인지 친구인지 알 수 있도록."<이솝 우화, 개와 토끼>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토끼처럼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일관성 없는 행동과 모호한 태도에서 사냥개에게 쫓기던 토끼처럼 우리는 상대가 진정한 친구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주임 시절이었다. "퇴근하고 한잔할래?"라고 평소 친하지 않은 직장 여성 상사가 말했다. 좀 의아하긴 했지만, 할 말이 있나 보다 싶어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술이 있으니, 진심을 이야기하며 많이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서로의 사생활까지 터놓으며 늦은 시간까지 있게 되었다. 상사 K는 술이 약한지 힘들어했다. 택시로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헤어졌다. 상사 K는 둘이서 밤늦게까지 술 마신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헤어졌다.
"니 어제 술 마셨나?" 친한 동료가 물었다.
"어 조금 왜?
"K 상사가 "여자가 늦게까지 술을 많이 마시면 실수 안 하겠냐"며 네 이야기 하던데….".
어이가 없었다. K 상사는 친근하게 다가왔다가도 뒤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사냥개 같았다. 술을 마시자고 한 사람도 술 취한 사람도 K 상사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비밀로 해달라고 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퇴직 후 가입한 단체의 회원 중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회원 B가 있었다. 나이도 같고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 팀의 총무를 맡고 있었고 난 팀장이었다. 항상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우리 관계는 편하지가 않았다.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사건이 있고 난 뒤였다. 회원 B는 단체에 소속된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2년이 되지 않을 때였기에 그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은 알 수 없었지만, 회원 B는 가장 먼저 떠났다. 그녀는 늘 웃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힘들었던 것 같다.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되는데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하다가 지친 것이 아닐까? 그녀 역시 우화 속 개처럼, 겉으로는 친근하게 핥으면서도 속으로는 물어뜯고 싶었던 건 아닐까.
고객을 상대하는 직장에 있다 보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볼일만 보고 가는 고객이지만 신상품이 나오면 설명도 끝나기 전에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하는 고객이 있다. 반면에 모든 것에 협조적인 것 같은 고객은, 오랜 시간 이야기하며 기대감을 주지만 그냥 가버리기도 했다 또 어떤 고객은 자신을 알아봐 준다는 것만으로 십년지기처럼 친근하게 하는 분도 있었다.
여러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사람의 행동과 진심 사이에는 종종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무관심할 수 있고.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 배려심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 관계는 참 모호하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어떤 표현이 진심인지 알기는 어렵다. "이보세요, 나를 물지 말든지 아니면 입 맞추지 마세요. 당신이 적인지 친구인지 알 수 있도록." 말하는 토끼처럼, 상대에게 일관성 있는 태도를 바라며, 동시에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관계는 가면 없이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때로는 쓴소리든, 위로의 말이든 그 모든 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면 상대방은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끼가 한 말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진정성에 대한 요청이다.
우리는 사냥개가 되기도 하고 토끼가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일관성 없는 행동에 당황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함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거짓 없이 일관성 있게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지혜다. 오늘 하루도 사람을 대할 때 진실함으로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물지도 핥지도 말고, 그저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