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자와 여우가 주는 교훈
사자가 늙어서 제힘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없게 되자 꾀를 써서 먹을 것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자는 병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굴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러고는 동물들이 문안하러 오는 족족 잡아먹었다. 많은 짐승이 죽자, 여우가 사자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사자를 찾아갔다. 여우는 굴에서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사자에게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다. "좋지 않아!" 하고 사자가 말했다. 그런데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사자가 묻자, 여우가 말했다. "들어간 자국은 많은데 나온 발자국은 하나도 없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나도 들어갔겠지요, "<이솝우화, 늙은 사자와 여우>
이솝 우화의 이야기에는 표면적으로는 위험을 간파하는 지혜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 삶의 중요한 선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선택 앞에서 과연 여우처럼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을까?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다가 술자리에선 거의 혼자 이야기하다시피 했다. 사람들도 남편의 유머 있는 말투에 듣기를 좋아했다. 회식 자리 분위기는 남편이 거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여우는 사자 굴의 발자국을 보고 현명한 판단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남편의 매력적인 첫인상에 이끌렸다. 하지만 결혼하고 30년 동안, 좋아했던 그 모습이 오히려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부담스러웠다. 결혼해도 여전히 남편은 예전 모습과 변하자지 않았고, 가족보다는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독서 모임에 000 교수님을 초대해서 특강을 들었다. 우리 부부를 아는 교수님이었다. 마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분이 잘 산다는 것이 신기해요. 성격상 도저히 맞지 않는데 말입니다."라며 이야기했다. 우리 부부는 맞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는 후배와 가끔 등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상남자 같은 남편이 마음에 들었어요. 문제가 생겼을 때도 나와 다르게 척척 해결해 주는 남편이 좋아 보여서 결혼했는데 그것이 결혼생활 내내 힘들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무 문제 없이 잉꼬부부로 살아가는 부부도 있지만 요즘 이혼율이 50%일 정도로 잘 살아가는 부부가 드물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성인이 만나서 서로 맞추며 산다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여우처럼 현명하게 선택한다고 해도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배려다. 남편 또는 아내에게 바라는 만큼 내가 먼저 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더 깨닫게 된다.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나이기 들수록 더 사랑스러워요" 80세가 넘은 어떤 부부의 말이었다. '이렇게 사는 부부가 있구나.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우의 지혜는 단순히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행동 뒤에 숨은 진심을 읽어내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우리도 결혼생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 현명함은 상대를 피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들어간 발자국은 있고 나온 발자국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준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되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용기다. 결혼도 선택이다. 콩깍지가 아니라 여우처럼 신중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