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우연히 자고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는 먹어치우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사이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본 사자는 토끼를 버리고 사슴을 뒤쫓았다. 토끼는 떠들썩한 소리에 깨어나 도망쳤다. 사자는 멀리까지 뒤쫓았으나 사슴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토끼에게로 돌아왔다. 토끼마저 도망친 것을 본 사자가 말했다, "나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해. 더 큰 것을 바라고 손안에 든 것을 놓아주었으니."<이솝 우화, 사자와 토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더 좋은 직장, 더 큰 집, 더 많은 돈..... 하지만 정작 손에 쥔 것들의 소중함은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솝 우화 속 사자처럼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 욕심은 한계가 없다. 이것 가지면 저것 가지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다. 더 가지고 싶은 마음에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온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왜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년 전에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이 깨달음을 주었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그곳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넓은 땅과 적은 인구로 인해 열차로 이동하려면 보통 10시간 이상 걸리는 그 나라에서, 나는 작은 마을 투르키스탄의 가장 시골스러운 곳을 찾아갔다.
43도까지 치솟는 무더운 여름날, 우연히 열린 문 사이로 집 안을 들여다보다가 한 어르신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인상이 다소 무서워 보이는 아들을 보고 망설였지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는 정성껏 맞이하며 직접 과일을 준비하고 현지 음식으로 잔칫상을 차려주었다. 한국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을 시청하고 'BTS'를 좋아한다며 반가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낌없는 환대의 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호롱불 아래 푸세식 화장실을 쓰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던 그 시절이 오히려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산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며 끼니를 때우던 그때는 불평불만이 없었다. 음식 하나라도 있으면 나눠 먹던 우리 마을의 정처럼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1톤 트럭에 수박을 삼각형으로 잘라 파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지금은 호롱불 대신 밝은 전등이 있고, 사과 껍질을 기다리며 침을 삼킬 필요도 없으며, 칼국수 반죽의 꽁지를 구워 과자 대신 먹지 않아도 맛있는 간식이 넘쳐난다.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메말라가는 것 같다.
'스위트 스팟'의 저자 '샘 리처드 교수는 '한류 전도사'라고 할 만큼 한국을 깊이 이해하는 학자다. 그는 한국인들이 기준이 너무 높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동시에 자살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근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가 주목받고 있다. 8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인구 19만 2천 명의 작은 국가지만, 서로를 돕고 지지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간소한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행복을 중시한다.
카자흐스탄에 마을에서 만난 따뜻한 환대와 바누아투 사람들의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은 닮아있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가진 것이 감사하며, 나무는 데서 기쁨을 찾는다. 이솝우화 속 사자가 깨달았듯이 더 큰 사슴을 쫓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현재에 만족하고 이웃과 나누는 마음에서 나온다.
끝없는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자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먼저 손안에 쥔 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은 후배와의 점심과 한참 만나지 못했던 둘째 아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큰 것이 아니라 사소한 현재 내 삶의 행복을 마음껏 누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