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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에 깨달은 것

어떤 사람이 말타견(犬)과 당나귀를 길렀는데, 그는 언제나 개 하고만 놀았다. 그리고 외식을 하면 맛있는 것을 남겨와서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에게 던져주곤 했다. 당나귀는 샘이 나서 주인에게 달려가 껑충껑충 뛰다가 그만 발로 주인을 찼다. 그러자 주인이 화가 나서 당나귀를 매질하며 끌고 가 구유에 묶어두게 했다. <이솝우화, 당나귀와 강아지 또는 개와 주인>





우화 속 당나귀는 자신의 본성을 잊고 남을 흉내 내려다 오히려 주인의 분노를 샀다. 진정한 행복은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당나귀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당나귀는 무거운 짐을 나르고, 사람을 태우고 하는 당나귀만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당나귀는 개가 받는 관심과 사랑이 부러워 자신의 본분을 잊었다.


눈, 코, 잎밖에 없는데 세상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골목골목에 있는 많은 철물점과 이름도 모르는 부속품 가게를 보면서 다양한 직업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 한 사람, 그 어떤 직업도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마치 당나귀가 개의 역할을 할 수 없듯이, 각자는 각자만의 고유한 자리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걱정이다. 80대 어르신이 60대 아들에게 '신호 잘 보고 다녀'라고 인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식이다. 어제 오랜만에 아들을 만나 저녁 먹었다. 남편은 내가 분위기 있는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금액에 상관없이 코스요리로 미리 주문해 놓았다.


아들은 직장 외에 틈을 타서 일어 번역 알바를 한다고 했다. 아들은 일본어 전공이다. 일본어를 한국어 다음으로 잘하고 좋아한다. 일본어를 전공하고도 다 잊어버린 나와 다르게 아들은 지속적인 성장하기 위해 번역일을 하고 있다는 아들이 대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아들을 보며 느꼈다. 수입에 상관없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아들은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표정이 밝고 좋아 보였다. 아들은 우화 속 당나귀처럼 남을 부러워하며 억지로 다른 모습이 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본어라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를 생각해 봤다. 운동할 때 즐겁고 행복하다. 어릴 때 구슬치기를 잘했다. 볼링도 '오늘의 하이게임' 명단에 이름에 몇 번 올랐다. 골프를 배울 때도 여자치고 비거리가 많이 나간다고 프로한테 칭찬을 들었다. 골프 박세리, 피겨스케이트 김연아, 수영 박태환 등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가르쳤기에 이름 있는 선수로 남았듯,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운동을 꾸준히 했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어떤 강연에서 들은 기억이 난다. 손자에게 뭔가 주고 싶었지만, 가난했던 할머니는 손자에 대해 기록했던 메모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손자가 무엇을 할 때 웃고, 웃는지, 어떤 것을 할 때 인상을 쓰는지에 대해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며 기록한 것이 적혀 있었다. 할머니의 선물은 물질적 풍요보다 마음을 담은 관찰과 기록이야말로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기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얼마나 행복한지 퇴직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삶을 살지 않는 방법은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화 속 당나귀처럼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일 때가 많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다운 삶을 살아갈 때 기쁨이 느껴진다. 오전에는 심방, 오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 스케줄이 있다. 남편과 함께 즐겁게 하루를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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