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나무>를 읽다가 쓰고 싶어져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춘천으로 이사 갔다. 처음에는 작은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다가, 아버지가 돈을 좀 잘 벌게 되면서 남춘천 역 뒤편 주택단지에서 살았다. 대지 200평의 꽤 큰 집이었지만 집은 작고 마당이 넓었다. 주택단지에 사는 사람들 형편은 고만고만했는데, 그래도 몇 집은 꽤 부자 축에 속했다.
엄마는 주택단지 아줌마들 몇 명과 어울려 화투치기를 좋아했다. 사실 좀 많이 좋아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 부르러 이 집 저 집 찾아다녔다. 주로 부잣집에 많이 모였기에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 부잣집에는 문학 전집이 한두 질씩 꼭 있었다. 그 집들을 도장 깨기 식으로 한 집씩 책을 빌려다 보았다. 한 번에 몇 권씩 빌려오면 한 집에 한 달 정도 걸렸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그 시절에는 말수도 적고 숫기도 없는 아주 조용한 아이였는데, 어떻게 혼자서 책을 빌리러 다녔는지 모르겠다. 자아의식도 없고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무심하게 빌리러 다녔다.
그래서였을까? 중학교에서도 책 욕심이 이어졌다. 하필 내가 들어간 중학교는 교장 선생님의 교육 철학으로 교실마다 큰 캐비닛에 책을 가득 채워놓고 1년 간 책을 많이 읽으면 독서 여왕이라는 명예를 주었다. 대단한 상품도 없지만, 그게 그렇게 탐이 났다. 어떤 때는 목록에 책 한 권 더 써넣으려고 급하게 읽기도 했다. 결국 독서 여왕이 되었지만,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때 얘기를 기억하는 친구를 만나면 쥐구멍을 찾고 싶다. 독서 상을 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또 한 번 나만의 독서 삼매경에 빠진 때는 고등학교 때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드디어 부모님이 세계 문학 전집 30권과 한국 문학 전집 30권을 사주셨다. 겨울에는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서, 봄 여름 가을에는 마당으로 나 있는 내 방 큰 창문턱에 걸터앉아 책을 읽었다. 날씨가 좋을 때도 좋았고 비가 올 때도 좋았다. 창문턱에 걸터앉아 책을 읽었던 때가 가장 무념무상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책과 함께 이어졌지만, 대학원에서 논문이라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읽었던 책은 기억에 별로 없다. 오히려 석사 논문 학기에 임꺽정 전집을 읽었던 일만 강하게 남아있다.
그래도 그런 일들이 쌓여서 그런지 십여 년 전부터 전공에서 약간 벗어나서 읽고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남의 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빌려 읽었던 그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목적 없는 책 읽기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