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활 단상

반떼야, 잘 가렴!

by 유영희

전화가 온다. 차를 가지러 온 탁송 기사다. 어쩌면 마지막 차일지도 모르는 반떼가 떠날 시간이다. 2013년에 샀으니 10년을 넘게 동고동락했던 차다. 마침 50일쯤 전에 10년 만에 처음 실내 세차까지 한 터라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그래도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외부 먼지를 쓸고 닦았다. 트렁크를 다 비우고 조수석 서랍도 비웠다. 마치 어린 아이를 멀리 떼어보내는 것 같은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1993년 한살림 생협에 가입하면서 ‘내가 차를 안 사는 이유’라는 글을 기고하여 한살림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차를 산다는 이웃에게 녹색평론을 싸 들고 가서 차를 사면 안 되는 이유를 강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할 무렵 마침 직장 동료가 아플 때 차가 얼마나 필요한지 유혹하는 바람에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 차는 중고 프라이드였다. 4년을 타자 차가 멈춰서 새로 산 차가 이 아반떼다. 아반떼 역시 4만 킬로미터를 주행한 중고차지만 너무 좋았다. 반떼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 반떼가 10년간 6만 킬로미터를 더 달리고 오늘 떠난다.


나의 반떼는 부모님 병원 방문과 아이들 픽업에 잘 동행해 주었다. K대 강의 때는 1교시 수업하고 3교시까지 기다릴 때 누워서 쉴 수 있는 휴게실이 되어주었다. 인천에 있는 K대 강의는 차가 없으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반떼가 없었다면 2016년보다 훨씬 전에 강의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년 가을부터는 차 쓸 일이 없었다.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독립했기 때문이다. 겨우내 세워두었더니 2월 28일에 시동이 안 걸려서 출동을 불렀다. 다시 4월 4일에 타려니 시동이 또 안 걸려서 출동을 불렀다. 두 번 다 너무 안 써서 배터리가 방전되었다고 한다. 괜히 일 없이 나들이라도 해야 하나 하다가 지구가 빨개진다는데 그렇게까지 차를 고집해야 하나 싶었다. 결국 차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보험료나 기름값이 껌값으로 느껴졌다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구보다 내 편한 것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반떼가 없으니 당근 마켓 거래도 어렵고, 고양이들이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 결국 유지비 때문에 떠나보내는 것이지만 지구에게 조금이라도 착한 일을 했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본다.

반떼야, 어느 나라로 갈지는 모르지만, 좋은 주인 만나서 다치지 말고 자연사하렴!

멀리 안 나갈게,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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