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위정 03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규제하면, 백성이 형벌을 면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규제하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선에 이르게 된다.”
▷ 주주 : 백성을 법과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모르지만, 덕과 예로 자신이 솔선수범하면 백성이 감동하여 따를 것이다. *법제와 형벌은 백성에게 죄를 멀리할 수 있게 할 뿐이지만, 덕과 예는 백성들이 자기도 모르게 선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말단만을 믿지 말고 근본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
▷ 금석 : 법으로 다스리는 것과 덕으로 다스리는 것의 우열을 논하고 있다.
▶ 유설 : 법제와 형벌은 백성을 강제하는 것이고, 덕과 예로 다스린다는 것은 솔선수범하여 백성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리면서도 현대에도 꼭 필요한 말 같기도 하다. 지도층이 덕과 예를 잘 실천하면 백성에게 감동을 주어 백성이 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것인데,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이것은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먼저, 이 말을 지도층이 새겨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지당하신 말씀으로 끝나기 쉽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도층이 덕과 예를 잘 실천한다고 해도 덕과 예로 모두 공감시키기도 어렵고, 덕과 예로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예와 덕으로 모든 사람을 공감시키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한데, 덕과 예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자는 예가 천리의 절문이라고 해서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고 의견이 분분했다. 조선시대 예송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덕과 예의 한계를 생각하다 보니, 덕과 예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공정하게 법과 형벌을 집행하는 것, 그것이 덕이고 예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논어와 만난 사연과 <주주금석 논어> 소개는 ‘주주금석 논어 생각’ 1에 있습니다.
*<주주금석 논어>에서 나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문장을 골라, 일부를 필사하면서 저의 생각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필사할 때 아주 살짝 윤문이 들어가거나 임의로 문장 부호를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본래 <주주금석 논어>의 본문에는 한자가 노출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가능하면 노출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괄호로 처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