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독서 모임이 최선이었을까?

작은 질문으로 내 삶 돌아보기

by 유영희

무료 독서모임이 최선이었을까?



작년 가을부터 ‘테오’와 ‘황필권’ 두 젊은이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다. ‘20일 완독 클럽’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는 테오는 참여자들이 정한 한 달 미션을 20일 인증 회수를 관리하면서 격려해주고 있고, 황필권은 첫 달 유료 온라인 글쓰기에 참여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미지 글쓰기 아지트를 운영하며 ‘주 1회 글쓰기’를 독려해준다. 테오의 20일 클럽은 완전 무료이고, 황필권의 미지 글쓰기는 첫 달 한번 회비를 내면 그 이후는 무료이다. 나는 20일 완독 클럽에서는 책 대신 운동 인증을 하고 있고, 미지 글쓰기 아지트에서는 글쓰기를 하면서 두 서비스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두 운영자 모두 고민이 있는 듯하다. 20일 클럽의 테오는 참여자들이 서로 조회하거나 격려가 없어서 고독한 인증에 지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고, 미지 글쓰기는 참여자가 많지 않고 참가했어도 주 1회 글 쓰는 이가 별로 없어서 활성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젊은이가 무보수로 이렇게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내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큰애가 네 살 무렵부터 이웃들을 모아 한 살림 활동을 하면서 무료로 독서모임을 주도했다. 그 당시 한살림을 이용하려면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다. 공동체 대표가 주문을 모아 일괄 주문하면 대표 집에 물품이 한꺼번에 오고, 구성원들이 자기 편한 시간에 대표 집에 와서 물건을 가져가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내가 배달해주기도 한다. 이걸 몇 년간 도맡아서 했다. 이것은 누구나 기꺼이 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무보수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활동이다.



그런데 독서모임은 좀 다르다. 나는 가방끈이 꽤 길다. 가방끈이 길다고 문해력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대학원 재학 시절까지도 문해력은 자타 공인 별로 빠지지 않았다. 애당초 독서모임 결성 목적이 교육의 의미가 강하기도 했지만, 이래저래 내가 가르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 책도 내가 정하고 진행도 하고 오독을 교정해주고 토론을 중재한다. 이런 활동은 무형의 서비스지만 진행자의 역량에 모임의 사활이 걸려 있는 약간은 고난도 서비스라, 사실 돈을 받아도 되는, 아니 요즘 같으면 돈을 받는 것이 마땅한 활동이다.



그러나 1994년부터 2019년 12월까지, 20여 년이 넘도록 독서 모임을 주도하면서 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돈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유학 전공자로서 내가 사는 동네 주민센터에서 <논어> 강의도 자청해서 1년 간 무료로 했고, 종강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웃이 또 해달라고 해서 내 서재에서도 몇 달간 했다. 물론 무료로.



왜냐고? 이렇게 좋은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 우리 동네가 서로 믿고 도우며 살면 좋겠어, 아이들이 잘 어울리고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어, 그런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알량한 나의 생업이라는 것이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4개월만 보수를 받고 2개월은 수입이 없는 6개월 계약직 강사라는 것도 전혀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한테 생활비를 많이 받은 것도 아니라서 궁여지책으로 시한부 부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한때는 그만큼 소명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2019년 12월, 그동안 해왔던 무보수 독서모임을 모두 종료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주머니를 뒤져야 할 절박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주머니에서 찾고 싶은 것은 뭘까? 돈인가? 명예인가? 지혜인가? 아니 그보다 그런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가 정말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을 얻기 위해 독서모임이라는 방법은 얼마나 적절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무료로 했다지만, 그것이 불교 용어로 꼭 선업을 지었다고 할 수도 없다.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 감정을 느낀 적이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잘한 일처럼 보여도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잘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각설하고,

이 나이가 되었는데, 기대수명이 너무 늘어 아직도 내 앞에 놓여있는 수십여 년의 삶을 바라보노라니, 그것을 끌고 갈 수 있는 그 무엇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했던 활동에 감사와 신뢰를 보내는 많은 이웃이 있지만, 그것이 내가 원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것이 내 삶을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때 <녹색평론>을 탐독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던 내 바람이 너무 막연했기 때문은 아닐까? 내 지향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의식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나 개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좀 더 균형 있게 생각했다면, 독서모임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을까? 독서모임이 적절한 방법이라면,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최선이었을까? 좀 더 체계적으로 운영해서 참여자들에게 더 유익한 모임이 되게 하고, 내게도 어떤 결과물이 남아있다고 느끼게 진행했어야 하지 않을까?



두 젊은이를 보면서 내 요즘의 문제의식이 오버랩된다. 무료로 20일 완독 클럽을 운영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뭘까? 미지 글쓰기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게 하고 싶다는데, 무슨 글을, 왜, 읽게 하고 싶은 걸까? 그 일들이 그들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무슨 소득이 있을까?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이걸 하다 보면, 저것을 못한다. 20일 완독 클럽을 운영하는 시간이 지금 당장은 자투리 시간일 수도 있지만(하지만 지금도 절대 자투리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모이면 큰 시간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출판이라는 본업 집중도가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20일 완독 클럽을 통해 출간하는 책에 유입하게 하고 싶다면 이해가 되는데(내가 자본주의적 사고에 절었나?), 책을 통해 완독 클럽으로 유입하기를 바란다니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책 판매보다 완독 클럽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미지 글쓰기에 글 올리기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서로 많이 읽어주는 것이 왜 좋은 것인가?부터 궁금하다. 무엇보다 운영자는 참여자들의 글을 다 읽고 있다.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무료로. 왜 그런 일을 할까?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의미 있을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일일까?



내 나이가 적지 않지만, 수명이 끔찍하게 길어져서 앞으로 살날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이 남았다. 그 시간을 어떤 지향을 세워서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2020년에는 잘 고민해보기로 하던 참에 두 젊은이의 노력과 고민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을 핑계 삼아 내 과제의 해결 실마리도 좀 찾고 싶어서 겸사겸사 몇 자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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