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확장을 위한 작은 질문 사용법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민음사) 읽기

by 유영희


독서모임의 목적은 개인마다 모임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오늘은 독서의 목적을 ‘인식의 확장’이라고 전제하고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 민음사)로 독서모임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독서모임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독서모임이 정말 눈에 많이 띈다. 도서관 등에서 무료 독서모임도 많고, 유료로 참가하는 독서모임 기업도 있다. 작은 서점에서도 독서모임을 많이 한다. 작은 서점뿐 아니라 교보문고 안에서 진행하는 교보 북클럽도 있다. 교보문고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라 그런지 참가비가 트레바리만큼 비싸지는 않지만 멤버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전편에서 말한 발제 방식의 모임도 있고, 책을 놓고 하는 모임도 있고, 책은 가져오되 진행자가 주도적으로 참고자료를 제시하면서 약간은 강의처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자유시민대학의 책 강좌는 대놓고 강의로만 진행한다. 참가비 액수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운영 기관의 성격이나 진행자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장소, 어떤 형태의 모임이든 ‘인식의 확장’을 목적으로 책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잘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아무래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책으로 모임이 있었다. 유진 오닐은 퓰리처 상을 네 번 받고 1936년에 노벨 문학상도 받은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라고 하는데, 이름은 들어봤어도 그의 작품은 읽은 적이 없는데, 우연히 이 작품으로 유진 오닐을 처음 만났다.


이 작품으로 여럿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그려보자. 이 글을 읽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부득이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본다. 이 작품은 희곡인데, 엄마 아버지 두 아들 이렇게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어려서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떠났고 엄마 손에서만 자랐다. 연극배우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중개업자의 꾐에 넘어가 쓸모없는 땅만 사고 따뜻한 가정을 꾸리지는 않는다. 아내가 아파도 싸구려 의사의 마약성 진통제로만 치료해준다. 아내는 결국 마약 중독에 빠진다. 큰아들은 알코올 중독이다. 작은아들은 폐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큰아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싸구려 공립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 엄마는 작은아들이 폐병이라는 것을 직감하면서도(작은아들 걱정에 마약을 다시 시작한다.) 감기라고 말한다. 마지막은 엄마가 자신이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책을 볼 때 아버지가 눈에 더 들어오는 독자도 있고, 아내나 아들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차이가 책을 같이 읽는 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 들어가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자. 아버지가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버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다를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렇게 긍정 부정 극단적인 평가에 대해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모임을 끝낸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모임을 하고 나면 나의 인식이 확장되었을까?


예를 들어, 가족에 대한 배려심이 없다는 것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을 배려해야 한다고 결론 낸다고 하자. 이렇게 책을 읽고 등장인물에 대해 나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끝냈을 때 인식의 확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내 틀 속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보면 어떨까? 아버지는 인색한 사람인가? 인색하다면 왜 인색해졌을까? 아들이 술을 먹을까 봐 술병에 눈금까지 표시해놓는 사람이 땅 중개업자에게는 왜 그렇게 술을 잘 사줄까? 왜 그렇게 땅만 살까?


인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이런 증거를 찾는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미국에 이민 와서 아이들을 낳고 혼자 아일랜드로 가버려서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웠던 열악한 가정경제 상황 때문이었을 거라고. 실제 아버지의 대사에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아버지가 안쓰럽다는 독자는 그가 이런 성장과정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를 비난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자랐으면 자기 가족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장 과정 때문에 인색하다는 것을 이해했다고 하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해보자. 그럼 가족에게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을까? 자신의 성장과정이 불우했다면, 자기 아내에게는 아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불우한 성장과정을 겪은 사람이 왜 그런 불행을 대물림할까? 불우하게 자랐다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인색한 태도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런 대물림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확장도 할 수 있다.


이런 질문들은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적용된다. 특히 엄마에게. 엄마가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거나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엄마가 왜 그랬을까?’부터 질문해가면,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찾아보게 된다. 그것이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특수성도 찾아보게 된다.


모임의 진행자가 참가자들이 이런 작은 질문을 거듭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주면 그 독서모임은 ‘인식의 확장’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더 잘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작은 질문은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질문으로 책을 같이 읽으면 독자마다 질문의 내용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 혼자 읽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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