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미 Dec 15. 2024

현명한 거절을 하기로 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벗어나기


삶이란 뭘까? 나는 자주 나에게 묻는다. 살아야 하는, 살고 싶은 이유에 관하여.


그러나 그 질문에는 늘 대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고작,

내가 안타깝게도 눈을 떴고, 숨을 쉬고 있고, 하루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20대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귀를 뚫었고, 20대 중반에는 타투를 했다. 내 스스로 나를 고통스럽게 할 용기가 없었으니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땐 그냥, 스트레스 풀기 위해 하는 행동 정도로만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정말로 그거 말곤 내가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끼는 일이 잘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예스맨이었다. 애당초 거절을 잘하지 못했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 일은 곧잘 내가 도맡아서 하기도 했었다. 나 하나 힘들면 해결될 걸 괜히 질질 끌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마 현재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남자친구와 박 터지게 싸우면서 우리는 서로 개성과 고집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존중하고 맞춰가기 위한 과정을 겪으며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살아온 세월이 제법 되니 무조건 남자친구의 영향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대충 추측을 해보자면 그 시점부터인 듯하다.


그전까진 늘 주말엔 쉬고 싶었지만 약속이 있었고, 주일엔 교회에 가면 보통 8~9시에 집에 들어왔다. 봉사를 제외하고라도 예배가 끝나면 조모임, 모임원들과의 저녁 등의 스케줄이 늘 잡히기 때문에 거절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늘 그 상황에 끌려만 다녔다. 내 시간이 중요한 나에게 그 시간들이 사라지니 삶은 점점 피폐해졌고, 나는 그렇게 점점 우울한 삶을 버티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 내가 우울증인 것 같다고 주변에 말하면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니가 무슨 우울증? 사는 건 원래 다 힘들어. 힘내. 우울증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우울증인 사람은 이렇다더라는 기준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하하 호호 일상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삶에 내가 없는 것. 그게 내가 처음 느낌 우울감이었다. 남을 돌보느라 나를 미처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나는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했다. 그저 하루에 끌려 다녔을 뿐이었다.






내가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시간이 필요했고, 그럼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사회와 단절한 삶을 살라는 의미는 단연코 아니다. 내가 충분히 쉬었다고 느꼈을 때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채워진다는 느낌이 드는 날도 더러 있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속에서 힘들다고 외치는 나 자신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지금 참고 그 순간을 지나치면 후에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온다.


한 번 거절하는 게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다. 가끔은 왜 먼저 연락을 안 하냐고 서운해하는 친구들도 있고, 먼저 연락이 끊길 수도 있지만 혹 그렇게 되더라도 그들과의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뿐이지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다. 나와 평생 갈 인연은 '나'뿐이다. 나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없다. 그러니 시작이 어려워도 한 번, 두 번 반복되면 거절은 오히려 어렵지 않고 오히려 내 삶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도 있다. 세상에 나를 힘들 게 하는 일이 수백 가지는 되는데, 남을 챙기느라 나를 포기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