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필연적으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통찰이에요. 그러니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기적이나 선물이지, 당연한 대가가 아니라는 거예요."
네가 선물해준 문장을 따라 적어본다. 기적이라는 말. 나는 별로 안 믿는 편이지만 어떤 마음, 시간은 기적에 가깝다. 나는 기적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저 그것에 가깝다고만 말해볼 수 있겠다. 언어란 필연적으로 존재로부터 미끄러져 내리는 물기 같은 거니까.
그러므로 그것은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잔에 맺히는 미끄러짐 같은 것이다. 존재에 대한 호명은 늘 그런 식으로만 가능하다. 맺힌 물기 틈으로 사랑해, 적으면 다시 무너져 흘러내리고 마는 것처럼.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실패를 바탕으로 한다. 불능을 기본으로 한다.
극복이라거나 딛고 일어선다거나 그런 말은 미뤄두고. 나는 살아있고 싶다. 행복하게. 살아있는 동안만. 살아있고 싶다. 너는 그런 나를 더 잘 살고 싶게 한다. 살아보고 싶게 한다. 어떤 마음을 적어내려 갈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사이에는 안개처럼 깔려 있을 테다.
다만 나는 나의 표면에 맺히는 이슬, 거기에 내가 아는 단어들, 최선의 언어들로 내 마음을 적을 것이다. 온기를 나눌 것이다. 고작 온기라는 게, 그게 최선이라는 게. 절박하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안다. 그러자, 적으면 그럴 수 있다. 나는 나를 믿으니까. 그러니까 사랑해. 이 말을 의심하고 또 의심할게. 그렇게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