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해지는 기억 속에서 은하수를 본 순간이 떠오른다. 고모와 함께 걷던 밤, 고모가 하늘을 가리키며 “저게 은하수야”라고 했을 때, 나는 희미한 안개처럼 번지는 빛의 띠를 보았다. 그것이 내 기억 속 마지막 은하수였다.
어느 순간부터 별 볼 일이 없어졌다. 처음엔 시력이 나빠져서 그런 줄 알았지만, 중학생이 되어 비타민 A 부족이 야맹증을 유발한다는 걸 배우면서야 내가 야맹증이라는 걸 알았다. 당근을 많이 먹으면 나아질까 싶었지만, 아무리 먹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당근이 원인은 아니었나 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밤이 되면 내게 장난을 쳤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을 접어 보이며 “이거 몇 개?”라고 묻거나, 갑자기 달려가 나를 혼자 남겨두기도 했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필사적으로 친구 옷자락을 붙잡고 뛰었다. 겁도 많아 죽기 살기로 옷자락을 잡았더니 친구 옷이 너덜너덜 해졌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해가 뜨기 전에 등교하고 해가 진 후에야 집에 돌아오는 날들이 많았다. 밤이 되면 나는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에 둔감한 눈으로도 산 능선의 어렴풋한 윤곽이 보일 때면, 그 흐릿한 빛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산 능선에 어슴프레 보이는 전봇대를 기준 삼아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내딛으며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야맹증을 숨기려 했다. 어둠이 두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밤길을 걷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뉴질랜드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던 40일, 그리고 호주를 종단하며 밤하늘을 찍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어둠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잠들고 때론 차에 몸을 뉘어 잠들기도 했다.
호주의 밤하늘을 담은 카메라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정작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순간,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는 느낌 속에서 마치 별을 품은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속에서 환하게 빛나던 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둠이 무섭다.
오래 겪다 보면 익숙해질 것 같지만 아니다. 하지만 어둠이 있다고 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춘 적은 없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으며 걸어왔고, 보이지 않는 별들을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별들은 언제나 곁에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