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졸업하던 내 앞에 여러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취업을 준비할 수도 있었고, 더 공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고, 유학을 고민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고, 어학원을 다닐 만큼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워킹홀리데이였다.
“워홀 가봐야 영어 늘지도 않아.”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나도 불안했다. 1년 간다고 영어가 확 늘까?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이왕 마음먹은 거, 가서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어를 싫어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랬다. 고등학생 때 국어를 좋아했지만, 문과로 가면 영어를 더 해야 할까 봐 이과를 택했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이과라고 해서 영어를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특히,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컴퓨터공학과에서는 영어가 필수였다. 프로그래머로 살아가려면 피할 수 없는 과목이었다.
결국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하지만 무작정 호주로 가는 건 무리였다. 기초조차 없었으니까. 그래서 필리핀에서 3개월간 어학연수를 하고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했다. 작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시작이 결국 내게 길을 열어주었다.
호주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면 직업 하나쯤은 구할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한 달 동안 이력서를 돌렸지만, 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는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낙관적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무작정 호텔을 찾아가 프런트 직원에게 이력서를 내밀었다.
“저,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문을 두드렸다고 쉽게 일이 구해질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고,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문득 떠올랐다.
‘워홀 가면 고생만 한다’던 사람들.
그들의 말은 어쩌면 맞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을 걸었을까? 아니다. 인생에서 어떤 선택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였다.
생활비가 바닥나기 시작하자, 결국 한인 브로커를 통해 청소 일을 시작했다. 청소조차 익숙하지 않은 몸짓에 선임은 한숨을 쉬었고,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청소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이 왔다.
“합격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만드는 건 결국 내 몫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