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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도 뛰었더랬다

by 우승리

고등학생 때, 영어가 너무 싫어서 이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영어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전공 서적을 원서로 보라고 하시는 교수님들이 계셨고,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원서를 몇 권 샀다. 하지만 몇 페이지 넘겨보지도 못한 채 책장 한쪽에 꽂아두기만 했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은 끊임없이 따라왔다. 앞으로도 컴퓨터로 밥 먹고 살려면 영어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교양 수업으로 꾸역꾸역 영어과목을 들었지만 몇 번이나 낙제점을 받았다. 영어는 안 되겠다 싶어 돌아서려고 했지만, 졸업을 위해선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결국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토익학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학원에 가려면 학교 언덕에서 내려오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그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챙겨 들고뛰기 시작했다. 문제는 중간에 횡단보도가 있다는 것이다. 신호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버스 정류장인데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이미 늦어버린 상황에서 멀리 횡단보도 신호가 깜빡이는 게 보였다. 저 신호를 놓치면 버스도 놓친다. 망설일 틈도 없이 도로로 뛰어들었다. 정차한 차들 사이로 빠져나가던 순간, 오른쪽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쾅—


부딪히는 순간, 내 몸이 붕 떠오른 게 느껴진다. 노을이 지던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푸른빛이 서서히 노랗게 물드는 그 모습이 유난히 뇌리에 박힌다. 주마등이라는 게 이런 걸까. 짧은 순간, 파노라마처럼 삶이 흘러가고 내 인생에 무엇을 남겼나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고작 ‘동아리에서 총무를 열심히 했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활기록부 한편의 메모를 읽은 듯한 느낌이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무단횡단을 했다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멀쩡한 듯 가뿐히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빠져 그저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고,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여러 검사를 받는 중에 보호자를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모님께 바로 연락하면 너무 놀라실 것 같아, 친하게 지내던 형에게 먼저 연락했다. 형은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와 주었다. 그래도 가족이 필요하다는 말에 결국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응급실로 와줄 수 있냐”라고 말했다.


살았다는 안도감. 무단횡단을 했다는 민망함과 수치스러움. 이러다 불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온갖 감정이 폭발한다.


부모님이 놀란 얼굴로 병원에 도착하셨고,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셨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고, 병원에서도 특별한 조치 없이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몸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부모님은 지금이라도 다시 입원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입원하면 중간고사를 못 본다’는 생각에 무리를 하며 학교에 갔다.


며칠 부딪혔던 다리에 통깁스를 하고 다니다가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게 쪽팔려 깁스마저 풀어달라고 했다.


그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무릎이, 지금까지도 좋지 않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도 조급하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시험이 뭐길래. 영어가 다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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