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걸어서 전국을 일주하거나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떠나보는 꿈을 꾸곤 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를 변화시켜 온 건 이런 모험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방학이 되기 전, 친구들에게 혹시 함께할 사람이 있냐고 물었을 때, 모두들 "좋지!" 하고 호기롭게 대답했었다. 그러나 막상 "이제 출발하자!" 했을 때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시간만 흘러 아무 일 없이 방학이 끝나버리는 게 아쉬워 결국 혼자서라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설레기도 했고,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이것저것 사들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여행 준비는 점점 완성되어 갔다.
당시 나는 혈기왕성한 청년이었지만, 평소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비리비리한 몸을 가진 내가 자전거 여행이 얼마나 힘들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저렴한 철제 MTB 자전거를 장만하고, 배낭을 싣고 떠났다.
처음 계획은 강원도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전국 일주는 무리더라도, 비슷하게라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강원도를 목적지로 정하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는 익숙한 동네를 지나니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마음도 가벼웠다. 하지만 점점 집에서 멀어지고 낯선 도로를 더듬어 가다 보니, 낯설고 묘한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가장 두려운 건 어둠이었다. 나는 야맹증이 있어 밤이 되면 시야가 거의 흐려졌다. 밝은 라이트를 준비했지만, 깜깜한 밤을 헤쳐나갈 자신은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걸 보면서 '오늘 밤은 어디서 잘까?' 하는 고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 달리다 보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더 이상 갈 힘이 없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개방되어 있어, 간혹 여행자들이 텐트를 치곤 했다. 허락 없이 머무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마침 마을 어르신이 다가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자전거 여행 중이라 말씀드리자, 친절하게도 마을 회관에서 씻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다.
첫 캠핑은 엉망이었다. 군대도 안 갔고, 텐트도 처음 쳐보는 터라,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다행히 돗자리를 챙겨 간 덕분에 간신히 깔고 누울 수 있었다.
어두운 운동장 한쪽에 홀로 누워 있으니, 바람 소리마저도 으스스했다. 괜히 유관순 동상이나 이순신 동상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떠오르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무서움을 쫓으려 라디오를 틀었지만, 어느 순간 텐트가 철썩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밖으로 나갈 용기는 없고,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질러봤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결국, 지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잔 건지 만 건지 애매한 상태로 밤을 보내고 다시 자전거를 끌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열심히 페달질을 하는 것도 잠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강원도에는 오대산과 대관령이 있었다. 오르막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보며, 나는 멍해졌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끌고 걸었다. 자전거 여행인지, 등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오후로 접어들었지만, 내 옆으로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걸까? 한참을 가다 보니 터널이 나왔다. 멀리 끝이 보이긴 했지만, 차가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무서웠지만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불도 안 켜진 터널을 등줄기가 오싹한 느낌을 받으며 겨우 지나니 반가운 내리막길이 보였지만 기쁨도 잠시, 곧 끊어진 도로가 나타났다. 끊긴 도로 끝을 보니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돌아서 우회할 길도 보이지 않았다. 망연자실 멍하니 서 있는데, 저 멀리서 트럭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이쪽으로 오진 않겠지?’
그러나 트럭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공사 구역으로 돌진했다. 눈앞에서 트럭이 전복되는 걸 보고도 현실 감각이 사라진 듯 멍해졌다.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 일하던 공사 인부들이 달려왔다. 그제야 나는 ‘혹시 내가 목격자로 붙잡히진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평소 악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너무 봤던 것인지 괜히 겁이 나서 서둘러 도망치듯 그 길을 빠져나왔다.
다시 오르막 길을 오르기 전에 있던 마을로 되돌아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디서 잘지 막막해 마을에 있는 한 집의 문을 두드렸다. 하룻밤 묵을 곳을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흔쾌히 방을 내어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어주신 따뜻한 저녁밥을 감사히 먹고, 전날과는 달리 편안한 잠을 청했다. 선뜻 낯선 이에게 음식과 잘 곳을 내어주신 두 분께 감사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달리고, 결국 대관령을 넘어 강릉 경포대에 도착했다. 해안가에서 젊은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헝클어진 머리와 지친 몸을 이끌고 바다를 마주했다. 바다는 한 없이 푸르른데 불현듯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군입대를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근처에서 복무 중이던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갑작스러운 면회에도 친구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의미 없던 여행의 끝자락이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하고 어설펐던 여정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철없이 떠났던 자전거 여행, 여전히 내 가슴 한편을 간지럽히는 기억이다.
어쩌면 이런 엉뚱한 에피소드들이 또 다른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결국 나는 뉴질랜드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뉴질랜드 여행 편 : https://brunch.co.kr/magazine/tripcy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