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개념없는 알바생

by 우승리

시골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달리 나는 꽤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출신이라면 길가의 풀이나 꽃 이름쯤은 알 거라고 묻지만, 정작 나는 농촌에서 자랐음에도 야채 이름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땐 게임에 빠져 살았고, 고등학생 땐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 아버지 일을 도와드린 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긴 방학을 맞이했다. 할 일이 없으니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자취방 근처에는 아르바이트할 곳이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도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비빌 수 있을 것 같은 PC방을 택했다.


면접은 사장님이 직접 보셨다. 나는 컴퓨터를 잘 안다는 걸 한껏 강조하며, 오래 일할 수 있다고 덜컥 거짓말을 했다. 알바 구직자들 사이에서 ‘한 달만 하고 그만둘 거라고 하면 뽑히기 어렵다’는 말이 떠돌았고, 당시 철없던 나는 ‘다들 그렇게 하나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결국 면접에 합격했고,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막상 시작한 알바는 예상과는 꽤 달랐다. 컴퓨터를 잘 안다고 해서 PC방 알바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포스기 사용법을 몰라 잔돈 계산에 버벅댔고, 손님이 우르르 몰려오면 머릿속이 하얘지기 일쑤였다. 마감 정산을 하면 어김없이 돈이 맞지 않았고, 모자란 금액은 내 돈으로 채워 넣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융통성도 별로 없어서 손님들과도 대면대면 했다. 한 번은 금연자리에서, 일부 손님들이 담배를 펴서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 됩니다.”라고 얘기했는데 “나 여기 자주 오는데?” 라며 담배를 끌 생각조차 하지 않는 손님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다행히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나는 점점 이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적응해 가던 중, 개강이 다가왔다. 처음부터 오래할 생각이 없었지만, 사장님께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갑작스러워서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퇴사를 통보했다. 사장님은 언짢은 내색은 했지만 크게 뭐라고 하진 않았다.


새로운 알바생이 오고 막바지 3일 동안은 그 알바생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전날 밤새 논 탓에 너무 피곤했다. ‘이제 더 알려줄 것도 없으니, 잠깐 눈이라도 붙일까?’ 생각하고 구석에서 몸을 뉘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새로 온 알바생이 나에게 전화를 넘겼고, 전화기 너머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욕설이 섞인 거친 말들이 귓가에 쏟아졌고, 순간 머리가 띵했다. 너무 놀라서 입이 바짝 말랐다.


욕을 먹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원래 약속했던 기간보다 빨리 그만두었고, 그마저도 마지막 날 잠을 자고 있었으니 사장님 입장에서는 한심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전화를 끊고 보니, 계산대에는 내 월급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 날은 사실상 일을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염치라도 챙길 요량인지 마지막 자존심인지 나는 그날의 일급을 빼고 도망치듯 PC방을 빠져나왔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다. 애초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더라면, 혹은 마지막까지라도 성실하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장님은 얼마나 많은 철없는 알바생들을 겪어야 했을까?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일을 시키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의 감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마치 어릴 때는 둘리를 응원하다가, 어른이 되어 고길동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처럼.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나는 한때, 누군가에게 진상 알바생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그때의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비록 직접 사과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속으로 용서를 구해본다. 사장님이 그날 내게 화를 내긴 했지만, 지금쯤은 나 같은 철없는 알바생 하나쯤은 잊어버렸을까. 하지만 나는 잊히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날을 되새긴다

keyword
이전 05화아웃사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