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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Oct 26. 2020

뉴질랜드로 떠나는 날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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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3일. 꽤나 오랜 기간 기다렸던 순간이다. 필리핀 영어학원에서 3개월, 호주 공장에서 6개월, 기타 준비기간 3개월. 대략 1년이란 시간 끝에 낯선 해외에서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돌이켜보니 스스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부터 자전거와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호주로 넘어와 그 자전거를 다시 뉴질랜드로 옮겨 오다니. 이렇게 귀찮고 무모한 짓을 할 필요가 있었나. 



처음 호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자전거 여행을 하려 했던 날이 떠오른다. 호주에 오자마자 일을 구하려고 했는데 비참한 영어 실력으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백패커라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몇 주일의 시간을 허비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렇게 돈을 축낼 거라면 여행을 먼저 시작하자'


짐을 싸서 당당히 도로 위로 올랐다. 그리고 무서운 도로를 마주하고 반나절도 안 되어 포기했다. 


그런 흑역사를 딛고 6개월간 호주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득의양양하게 뉴질랜드로 떠난다. 이전에 호주에서 여행을 시작하려고 했던때 어려웠던 건 자전거에 붙인 트레일러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여행을 떠났었다


자전거에 연결한 묵직한 트레일러 위에 무거운 배낭까지 올려서 무게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니 트레일러가 작은 언덕만 넘어도 개복치처럼 이리저리 드러누웠다. 실패를 양분삼아 이번엔 트레일러가 아니라 자전거 짐받이 옆에 메달 수 있는 페니어를 준비했다.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으로는 대략 한 달간의 일정을 잡았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어 있는데 둘 다 여행하기에는 일정이 촉박할 것 같아 남섬만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첫 도착지점은 뉴질랜드 남섬의 넬슨이란 곳이다.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건 늘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다. 짐을 제대로 쌌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두고 온 건 없는지 짚어보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 절차를 밟는 일은 한층 더 긴장감을 높였다.

묵직한 자전거 박스

긴장의 메인 디쉬는 묵직한 자전거 박스였다. 비행기에 짐을 실으려면 무게 제한을 잘 맞춰야 하는데 생각보다 박스에 들어간 내용물들이 많았다. 결국 공항에서 박스를 다시 뜯어 자질구레한 짐을 배낭에 넣고 몸에 걸쳤다. 겨우겨우 무게를 맞추고 수속 절차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여행은 늘 알 수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런 상황들은 지나고 나면 해프닝이 되지만 막상 닥쳐온 상황 속에서는 온갖 걱정과 두려운 상상들을 하게 만든다. 마침 비행기를 탔는데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진 않을텐데 어찌 나에게 벌어졌을까?


곧 출발하리라 생각했던 비행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결항 됐다. 사람들이 모두 탑승했는데 비행기 뒤편에서 '딱딱'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조만간 한 승객이 승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결국 해당 비행기는 결항됐다. 나는 넬슨으로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결항되고 새롭게 받은 티켓은 오클랜드 행이었다.


결항되어버린 비행기...

그래. 인생사 역경의 연속 아니겠는가. 한 치 앞도 못 보는 세상 이건만, 어찌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는가. 비행기가 뜬 후에야 사고가 생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마음을 다잡고 오클랜드 행 비행기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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