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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Nov 08. 2020

Westport에 도착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뉴질랜드 남섬 자전거 여행기 - 10편

지난 이야기)


어제는 '미친' 샌드플라이 때문에 아주 재미난 샌드플라이 잡기 놀이를 하다가 잠들었다. 텐트 어디에 구멍이 있는 건지 잡아도 잡아도 계속 텐트 속으로 들어오는 샌드플라이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공포).


강가 옆에서 분위기 좋게 모닥불을 피우며 캠핑하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모습인가 보다.


샌드플라이들을 뚫고 짐을 쌓아야 한다니 벌써부터 눈 앞이 캄캄하다. 어찌 됐든 여기를 벗어나려면 출발해야 해야 한다. 일어나 침낭을 정리하고 짐을 텐트 밖에서 빼기 편하게 정리해놨다.


자. 이제 시작이다.  


비장하게 텐트 문을 열었다. 부리나케 자전거를 가져와 텐트 앞에 세워놓고 패니어를 먼저 달았다. 그 사이 미친 샌드플라이들이 다리에 다닥다닥 달라붙는다. 문득 넬슨에서 떠나기 전 친구 지인이 '샌드플라이가 많아서 뿌리는 약 같은 걸 사야 할 거야'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샌드플라이가 뭔지도 몰라 우습게 여겼던 게 이제 와서 후회된다. 주마등처럼 지난 일이 생각나는 사이 샌드플라이는 내 감정과 생각 따위 무시하고 계속 다리에 달라붙는다. 다리에 붙은 샌드플라이를 떼어 내기 위해 오른발, 왼발 생전 춰본 적도 없는 탭댄스를 열심히 추면서 짐을 자전거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텐트를 간신히 접고 나서 짐을 밧줄로 묶으려는데 마음은 급한데 제대로 묶이지 않으니 속이 타들어 간다. 그 사이 샌드플라이는 연신 나의 다리를 물어뜯고 있다. 급한 마음에 쌓았던 짐은 균형이 안 맞아 자전거가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길 반복. 숨은 가빠오고 샌드플라이는 내 다리를 연신 쪽쪽 빨고 있다. 엄청난 사투 끝에 간신히 짐을 다 챙겨서 자전거를 도로 위로 이동시켰다  


너무 급하게 짐을 쌓아 혹시 빠진 게 있나 확인할 틈도 없이 다시 샌드플라이가 달라붙는다. 샌드플라이들을 떨쳐 내기 위해 바로 출발.


해뜨기 전이라 안개가 산을 덮고 있다
절벽을 깎아 만든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난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데다가 산 속이라 그런지 짙은 안개가 산 중턱에 걸쳐 있다. 다소 몽환적이고 고요한 풍경이다. 다행히 도로에는 안개가 없어서 주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가는 길에 암벽 옆에 붙어 있는 'One Lane Bridge' 안내가 보인다. 뉴질랜드엔 One Lane Bridge(이하 OLB)가 종종 있었는데 이걸 만날 때마다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야 했다. 이유인즉슨 자전거가 느리다 보니 반대쪽 라인에서 차가 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기다리는 경우도 많고 커브길처럼 반대편 차량이 나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들도 있기 때문에 OLB를 만나기만 하면 미친 듯이 밟는 것이다.


다행히 뉴질랜드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자전거 여행자들을 배려하는 운전자들이 많다. 그리고 OLB가 있으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위해 신호등을 수동으로 켤 수 있는 버튼을 다리에 만들어 두어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Berlins에서 Westport까지 가는 여정이므로 크게 무리한 일정은 아니다. 30km 정도의 거리에 내리막 길이 대부분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금방 도착할 것 같다.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그런지 어느덧 Westport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산줄기를 따라 내려오던 강이 Westport에서 바다와 만나 넓게 펼쳐진 것이 보인다. 너무 오랜만에 큰 마을에 도착한 느낌이다. 지나온 마을들이 생각 외로 정말 작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문명이라는 것을 접할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막상 들어온 Westport는 기대와 달리 큰 마을은 아니었다. 뉴질랜드에 사람들이 없긴 없나 보다. 마을 하나가 50~60Km는 가야 하나 나올까 말까이며, 그나마 있는 마을도 이렇게 크지 않다니 말이다.


다행히 마을에 큰 슈퍼가 있다. 필요한 물품들은 살 수 있을 것 같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가 온 통 한산한 느낌이다. 호스텔부터 찾아 방을 잡았다. 호스텔 방이 6인실이라는데 29불이다. 내 기준에서는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어제 야영을 했기 때문에 퉁쳤다고 생각하자.


머물렀던 호스텔 전경


짐을 방에 옮겨 놓자 마자 샤워부터 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수염은 길러본다고 기르고 있는데 정리를 한 번 해줘야 할 것 같다. 외국인 같은 멋진 모습으로 수염이 자랄 줄 알았는데 산적 같은 모습이다.


샤워를 하고 한숨 돌린 후 밖으로 나갔다.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그리 크지 않아 마을에서 딱히 볼만한 것이 없다. 슈퍼에 가서 먹을 걸 사고 점심 식사로 빵과 맥주를 마셨다. 오래간만에 마셔보는 맥주가 그렇게 달달할 수 없다.


한잔 한 후 i-Site에 가서 주변에 둘러볼 것이 있나 물어봤다. 대체로 여기선 볼만 한 게 없고 Karamea에 가야지 볼만 한 게 있다고 한다. 직원이 Karamea가 정말 좋은 곳이라고 열렬히 설명하는데 귀가 솔깃한다.  


사실 지난번 골든 베이(Takaka)에 갈 때도 여행 루트와는 맞지 않아서 망설였었는데 이번에도 '갈까?' 하다가 이내 접기로 했다. 홍보지에 실린 사진들이 가보라고 날 꼬셨지만 몸도 많이 지쳐 있는데 Karamea를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생각을 하니 힘에 부쳤다.  


지난 1주일 동안 느낀 거지만, 뉴질랜드는 캠핑카를 끌고 여행하기 좋은 곳인 것 같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지만 뉴질랜드의 볼거리가 다채롭고 산맥도 풍부한 곳이기 때문에 여유 있게 산까지 가서 트랙킹을 하고 오려면 차로 이동하며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몇 번 산을 지나왔지만 자전거로 산을 타고 올라간 사이 다시 산을 트랙킹 하겠다는 엄두가 안 났다.  


여하튼 Karamea는 넘기기로 하고 직원이 알려준 Westport에서 볼만한 곳 중 가까운 해변을 가기로 했다. 다른 곳은 내일 나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해변만 보고 일찍 숙소로 돌아가 일정에 대한 정리를 해야겠다.

해안가는 상상과 달리 모래사장 해변이 아니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오두막

해변이 가까운 곳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막상 갔더니 해변이 말끔한 상태가 아니라 여기저기 부러져 있는 나무들 때문에 상상하던 모래사장 해변이 아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나무들을 조금 지나서 바다 쪽으로 더 나가자 제대로 된 해변이 보인다. 해변은 한산했다. 중간에 누군가 오두막 같은걸 지어놨는데 꽤나 튼실해 보인다.

 

모처럼 고기를 구워 먹는다


주행거리: 40Km

이동위치: Westport 방향 어딘가 - West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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