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의 산후조리 후기

by 우승리

어느덧 한 달 넘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아내와 나는 '이제 슬슬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명절 이후 올라가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모르겠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데리고 걱정 속에 부모님 댁에 내려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지구가 태어난 지 50일이 지났다.


부모님 댁에서 편하게 산후조리를 할 수 있었던건 사실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아내 혼자 부모님 댁에 가야 할 상황이었다면 선뜻 보내기 어려웠을 것이고 아내도 그렇게 결정하기 힘들었을 거다.


다행히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었고 부모님은 농번기를 지나 겨울 휴식기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돌봐주시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에게도 부모님께도 너무 감사하다. 부모님께서 특별히 까탈스럽게 하시는 것도 없고 그런 성향이 아내와도 잘 맞았기 때문에 아내가 선뜻 남편 부모님 댁에서 산후조리를 하겠노라고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무리 편한 사이라고 해도 친가족이 아닌 이상 어떤 선이 존재할 수 있다. 나는 편함의 정의를 상대방 앞에서 대자로 뻗어 누울만한 사이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장모님 앞에서 대자로 뻗어 누워 있기 어렵듯이 아내 또한 우리 부모님 앞에서 대자로 뻗어 누울 정도로 가까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아내의 결정으로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아내의 결정에 의아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동거를 하면 싸우며 틀어지기 마련인데 하물며 고부 사이에 쉽사리 한 집에서 지낼 수 있는 건가 걱정이 앞섰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부모님께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시간을 드린 것 같다. 부모님께서 한참 젊었을 적에 나와 내 동생을 키우던 때엔 너무도 바쁘셨다. 애가 어떻게 크는지 볼 새도 없이 밭이며 들이며 나가 일하시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나와 동생을 이 집에 맡기고 저 집에 맡겨 키워서 어떻게 키웠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고 하신다.


이번에 부모님이 지구를 돌보시면서 '맞아 그랬었지.' 하며 정말 신생아 때 아니면 볼 수 없는 아기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껏 보셨다.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도 소중한 추억을 나눠준 시간이다. 이다음에 지구가 컸을 때 "지구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널 이렇게도 안고 저렇게도 안고 때로는 너무 작은 너를 어쩌지도 못하고 난감해하시면서도 행복해하며 키우셨단다."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출산을 하고 얼마 안 된 육아의 시간이지만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걸 보며 문득 나는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의 성장이 필연적으로 내 부모님과의 이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가끔 슬픈 생각도 든다. 나는 이제 내 자녀를 책임질 가장이 되어 아이만 바라보고 살 텐데 그 뒤를 또 바라봐주시는 부모님이 계셨던 걸 어느 찰나에 잊을까 두렵기도 하고 영원히 내 곁에만 계셨으면 하면 욕심이 들기도 한다.



걱정이 앞서는 나는 이번 아내의 결정에 우려를 표했지만 걱정과 달리 감사하게도 모두가 행복하게 지구와의 추억을 만들었다. 엄마가 밥해주시고 빨래 도와주시고 아버지가 틈나면 안아주시는 실직적인 편안함이 있어 좋았지만 그보다도 가족이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데 더 큰 기쁨이 있었던 시간이다. 아내 역시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 산후조리를 하며 지냈던 게 아니라 부모님 덕에 삼시 세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고 손 하나 움직이지 않으며 아기 수유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중간에 끼어 눈치껏 설거지하고 눈치껏 빨래하고 뒷정리해야 했다는 건 안 비밀... 그래도 아내가 시어머니 설거지하게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내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ㅠㅠ)




부모님 댁에서 산후조리를 마치고 올라오는 날.

나는 "엄마 아버지도 쉬셔야죠. 짐은 저희가 챙겨갈게요."라고 말씀드렸다. 배려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쉬시라고 한 것인데 부모님께서는 부득불 "짐이 많은데 우리가 같이 실어다 줄게."라고 말씀하셨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데 옆에서 아내가 "그냥 같이 가시자고 하자."라고 슬며시 말한다. '허참. 올라갔다 내려오면 그게 시간이 얼만데. 부모님도 피곤하실 텐데...' 라며 투덜거리다가 부모님께 그럼 서울에 같이 가시자고 말씀드렸다. (사실 가져온 짐은 차 한대에 못 실을 정도로 많기도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짐 정리를 하고 식사 후 차를 마시고 부모님을 배웅해드렸다. 그런데 올라오시기 전부터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가시면서도 엄마가 눈시울을 붉히시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셨다. 한 달 좀 넘는 시간 동안 지구와 함께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는데 갑작스레 집에 홀연히 두 분만 계시고 지구를 매일 못 보시니 서운하셨던가 보다.


문득 생각난다. 엄마가 지구를 하루 종일 안고 있었으면서도 지구 아빠, 엄마가 안을 새도 없이 지구를 안고 있어서 내가 핀잔을 주었다. 막상 엄마가 우시는 걸 보니 '에고.. 좀 더 안을 수 있게 해 드릴걸. 나야 앞으로도 많이 안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내는 우리가 홀연히 사라지면 우리 부모님께서 갑자기 얼마나 적적하시겠냐며 오며 가는 일이 번거로움을 알지만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했단다.



모두가 행복하면서도 아쉬운 시간이 됐다. 하지만, 평생 같이 살 수만은 없는 것이니 좋은 추억에 감사하며 부모님 댁에서의 산후조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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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부부만의 생존게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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