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월이다. 대학원 졸업 후 1년이 흘렀다. 그동안 난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해외를 나와 기대했던 건 무슨 판타지였을까. 그래도 지난 시간, 분명 얻은 것도 있다.
새벽에 추워서 잠이 깼다. 갑자기 이렇게 춥다니. 양말을 신고 다시 잠을 청했다. 원래는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추워서 새벽에 깼더니 더 자고 싶었다. 8시가 되어서야 텐트 안에서 수프를 끓여 먹었다. 위험한 짓이지만 가져온 버너가 꽤 괜찮은 덕에 무리한 짓을 할 수 있었다.
열기가 올라오면서 텐트 안이 좀 따듯해졌다. 수프를 먹으니 몸에도 온기가 돌아 움직일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먹었던 그릇들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했다. 짐을 정리하고 텐트를 접고 갈 준비를 마쳤다.
이제 Franz Josef Glaciers를 향해 간다. 그곳에 가면 슈퍼마켓이 없다는 가이드 설명을 보고 중간에 Whataroa에 들러 먹을 걸 챙겨가자고 생각했다. 중간에 200m 정도 되는 산이 있으나 그리 높지 않으므로 큰 걱정은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꽤나 화창하다. 요 며칠 모든 정경이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전거 타는 맛이 덜 했는데 오늘은 어째 날이 좋아 달리는 기분도 꽤 좋았다.
Whataroa에 도착해서 슈퍼마켓을 들렀다. 이 근처에 슈퍼마켓이 더 이상 없으니 여기 가격이 꽤 비쌀 거라 생각은 했지만 너무 비쌌다. 수프 2개와 참치 하나 음료수 한통을 샀는데 14불이나 됐다. 젠장. 거의 2배 되는 가격으로 불려서 파는 듯했다. 원래는 앞으로 슈퍼가 없을 테니 잔뜩 사야지 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뭘 집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허탈해진 마음으로 가게를 나와 테이블에 앉아 빵으로 점심 식사를 때웠다. 스프라이트 한통이 4.50 정도 한다니. 어마어마하다. 그동안 돈 아낀다고 야영하면서 용쓴 건 뭔가.
끼니를 대강 때우고 다시 움직였다. Franz Josef까지 완만한 언덕이 이어져 점점 지쳐갔다.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이는데 가까워지질 않는다. Whataroa에서 30km를 더 달려 드디어 Franz Josef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Top 10 Holiday park가 있어서 체크인을 할까 말까 하다가 여기가 낫겠거니 하고 들어가서 체크인을 했다. 텐트 사이트를 20불이나 받다니 날강도 같은 녀석들.
텐트를 친 후 짐을 풀어놓고 가벼워진 자전거를 끌고 마을로 들어가 봤다. 근데 웬걸? 슈퍼마켓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Whataroa에서 샀을 때 보다 더 싼 것 같다. 이런. 사기당한 기분이다.
쓰린 속을 달래며 마을 중심을 벗어나 Franz Josef 빙하를 보러 갔다. 다리 옆의 인도를 따라 빙하를 볼 수 있는 길로 이동했다. 가는 길 옆, 강이 흐르고 있는데 잿빛 색깔의 강물이다. 경사가 좀 있는지 유속이 상당하다. 한번 만져 보고 싶어 가서 손을 담가봤는데 엄청 차갑다.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서 그런가?
한참 길을 따라 산에 가까워지니 주차장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어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빙하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멀리 눈 덮인 산과 그 밑으로 빙하 같은 것이 보였는데 꽤 멀다. 계속 걸어가는데 중간에 가이드 없이는 산을 오르지 말라는 안내가 보인다. 더 올라가니 더 이상 길이 없다. 이왕 온 거 빙하라도 만져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왔는데 아쉽다.
빙하를 먼발치서 보고 마을로 돌아와 장을 봤다. 뭔가 허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빵이랑 사과랑 고기까지 사는 나름 대 지출을 했다. 오늘 쓴 돈만 50여 불이라니. 아까 Whataroa에서 뭔가 샀던 게 이리 마음이 쓰릴 줄이야.
캠핑장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고기를 구워 미고랭과 밥이랑 같이 먹었다. 오늘도 고추장이 없어 아쉽다.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이랑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중간에 200m에 달하는 경사가 있지만 그리 긴 거리는 아니어서 무난하다. 멀리 Franz Josef 빙하가 있는 산이 보인다.
텐트 사이트가 20불이라니 너무 비싸다. 시설은 깨끗해서 좋긴 하다. 취사도구를 사용하고 싶으면 5불을 내야 한다. 마을 중심가랑 1km 정도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