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점점 추워진다. 잠은 깼는데 나가기 쉽지 않다. 오늘은 좀 느긋하게 8시나 되어 움직였다. 치킨 수프(닭백숙 국물 느낌이다)를 끓여 빵이랑 먹은 후 씻고 자전거 수리를 했다. 어제 흙길을 달렸더니 자전거가 온통 먼지로 뒤범벅이다. 그리스가 발라진 곳에 먼지가 엄청나다. 떨어졌던 페달에도 흙먼지가 심한 상태다.
일단 페달을 분리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일단 휴지로 닦아내고 재조립하기로. 휴지로 닦으니 깨끗한 페달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는 생각과 달리 조립이 잘 안 된다. 뭐가 문제지? 오른쪽 페달을 분리해 어떻게 조립하는지 비교해봤다. 그제야 내가 조립을 잘 못 했다는 걸 알았다. 여태까지 어떻게 다녔던 걸까? 지난번 떨어졌을 때 애초에 잘 못 조립했던 것 같다. 이번엔 제대로 된 방법으로 다시 조립했다. 페달 조립 후 뒷 변속기를 확인했다. 최적의 상태로 맞춰보고 싶었지만 영 안 맞아 들어 긴다. 얼추 맞춰져 더 이상 건드리기보다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전거 수리가 끝나고 코코아 한잔. 걸어서 타운 중심으로 나갔다. 오늘은 자전거 없이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자. 어제 너무 달렸더니 무리하기 싫어져 오늘은 카메라와 책을 들고 나선다.
점심때가 되어 어제 검색해 봤던 맛집을 찾아 나섰다. 20불 정도는 외식으로 쓸 생각으로 맛집을 찾았는데 30불이 넘는다. 다른 곳도 25불 정도. 내 주제에 무슨 외식인가. 이 돈으로 차라리 퍼그 버거를 세 번 먹겠다.
마음을 바꿔 퍼그 버거에 갔다. 점심 때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줄을 서서 기다려 햄버거를 사고 부다 카페에서 모카커피를 샀다.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처음 퍼그 버거를 먹었을 땐 '이게 그렇게 맛있나?' 하고 의문이 들었는데 오늘은 꽤 맛있네? 모카커피도 나쁘지 않다.
여유롭게 햄버거를 먹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인내심 있게 내 앞에서 기다린다.
'난 너한테 아무것도 줄게 없다.'
내가 다 먹을 때 동안 기다렸다. 무서운 녀석.
점심을 해결하고 노래를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느 노부부가 서로 알콩달콩 하는 모습이 보인다. 젊었을 때 열렬히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을 키우느라 한참 시간을 보내고 이제야 두 분이서 저렇게 오붓히 여유를 즐기는 것이려나. 그런 게 인생이려나. 왠지 모르게 눈물이 글썽인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옆에 어떤 할아버지가 건반을 준비하고 있다. 무슨 노래를 뽑아주시려나 기대하고 기다리는데 흘러나오는 곡은 다름 아닌 '목마른 사슴'이다. 오랜만에 듣는 가스펠에 마음이 찡 한다.
햇살 비추는 곳에서 책을 읽었다. 저녁때가 되어 캠핑장으로 돌아가려고 자릴 옮겼다. 가는 길에 스카이라인을 들렀는데 바이크 코스가 있다. 헐. 진작 와 볼걸. 아쉽다. 그래도 오늘은 잘 쉬었으니 만족하자.
캠핑장으로 돌아와 짐을 두고 마트에서 저녁거리로 소고기를 샀다. 밥을 하고 소고기를 굽고 미드 24시를 봤다. 이제 내일이면 퀸스타운도 안녕이다.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으나 다음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