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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r 30. 2020

아버지의 비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미 환갑을 넘은 아버지는 여전히 일을 하고, 월급을 벌어오셨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버지의 직업을 비밀로 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매일 출근 시간이 다르고, 낮에 집에서 주무시는 시간이 많다는 점으로 미뤄, 뭔가 불규칙적인 일이고,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일을 하던 도중 범죄 사건이 일어나 경찰서에 계시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도 모르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찰서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아버지의 직업은 경비였다. 젊은 시절 방적회사에 다니며 1970년대 중동특수 당시 이란에서 산업역군으로 활약하셨던 아버지는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퇴직을 하셨고, 이미 나이가 든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비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직 학생인 내가 큰 꿈을 꾸길 바라셨던 어머니는 혹시나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내가 밖에서 기가 죽거나 위축될  것을 우려해 이를 비밀로 하신 거였다.


 아파트로, 상가로 경비 일을 찾아 떠돌던 아버지가 당시 자리를 잡은 곳은 한 건설현장의 경비실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혼자 근무하던 어느 날 밤 절도범들이 몰래 현장에 숨어 들어와 값비싼 건설자재들을 훔쳐 달아나는 일이 벌어다. 사건 당시 그 큰 공사현장의 경비는 아버지 한 분뿐이었고, 현장을 감시해야 할 CCTV는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근본적으로 그런 절도범을 막을 수 없는 구조였음에도, 건설사가 계약한 보험사에 피해를 보상해준 보증보험회사는 한낱 힘없는 노인인 경비에게 피해액 전액을 갚으라며 구상권을 청구했다.


 현장 상황을 알기 위해 아버지가 일하시던 곳을 찾아갔다. 두 평 남짓 다리를 다 펴기도 힘든 그 좁은 경비실 한 구석에는 아버지가 혼자 밥을 해서 먹었을 조그만 1인용 미니 전기밥솥이 놓여있었다. 가족을 위해 그 불편한 공간에서 밤을 지새우며 홀로 옹색한 밥상을 차려먹었을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전자제품 매장에 갔다가 1인용 미니 전기밥솥을 보면 그때의 아버지가 생각나 울컥하곤 한다.

 아버지가 돈을 갚지 못하자 소송결국 재판으로 넘겨졌고, 어디에서 도움받을 곳도 없던 나는 법률구조공단의 무료법률상담 서비스 도움을 받아 보증보험회사와 싸웠다. 지난한 싸움 끝에 결국 법원이 중재한 합의를 양측이 받아들이면서 우리 몇백만 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때 겪은 부당한 경험은 훗날 내가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데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몇 년 뒤, 회사에서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발령을 받아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고 있는데 문득 그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우리 아버지처럼 자녀나 다른 가족에게 직업을 숨긴 채 일하고 계신 분들이 있지 않을까. 수소문 끝에 경기도에 있는 한 경비 교육원을 찾아갔다.

 경비가 되려면 법적으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이 있다. 44시간의 기본교육을 이수하고 경비지도사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경찰관 직무집행법 같은 법률은 물론, 화재 대처법, 응급처치법, 호신술에 심지어 테러 대응요령까지 교육내용이 만만찮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도 다 이런 과정을 거친 분들이다. 경비 일을 하면서 동시에 교육과정을 이수해도 되기 때문에 대부분 경비 일과 교육 이수를 함께 하는데, 밤 일하고 온 뒤 잠도 못자고 하루 종일 교육을 받아야 하다보니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교육원에 양해를 구하고 강의실 한 곳에 들어가 설문조사지를 돌렸다. 원래 무슨 일을 하셨는지, 어떻게 해서 경비 일을 하게 되셨는지, 혹시 가족한테 이 일을 비밀로 하고 계신 분이 있는지....... 구석에서 설문지를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 있던 스태프에게 나이가 지긋한 교육생 한 분이 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혹시 MBC 김경호 기자 알아요?”


 뜻밖의 곳에서 들린 내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말씀하신 분의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뉴스후’라는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당시, 서초에서 보금자리주택 건설로 철거 위기에 몰린 대규모 화훼농가의 사장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분이었던 것이다. 방송 이후 여러 우려 속에서도 보금자리주택 건설은 강행됐고, 30년 가까이 그린벨트에서 땅을 빌려 화훼농가를 하던 사장님은 임차인에게 주어지는 몇 푼의 보상금만 받고 일하던 곳에서 쫓겨난 뒤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경비 교육원까지 오게 된 거였다.

 반갑게 손을 잡고 서로 지난 몇 년간의 근황을 얘기하다 사장님의 설문지를 보니, 사장님 역시 자녀들에게 이 일을 한다는 것을 비밀로 하고 계셨다. 자녀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힘든 일 한다고 걱정할 것 같기도 해서 얘기를 하지 않으셨단다. 조심스럽게 혹시 다큐멘터리에 사장님의 사연을 담아도 될지 여쭤봤더니, 이제는 자녀들이 알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며 촬영을 허락하셨다.

  촬영을 하며 만나보니 성인이 되어 이미 가정을 꾸린 사장님의 아들과 딸은 아버지가 경비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녀에게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존중해, 그들 역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자녀는 아버지를 위해 서로에게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연은 그 해 MBC 창사 50주년 다큐멘터리 ‘타임’ 시리즈의 ‘비밀’ 편으로 방송됐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 대해 가장 잘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난 1999년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학생과 교사 13명이 목숨을 잃고, 24명이 다친 ‘콜럼바인 총기사건’의 가해자,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보면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수 클리볼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아들이 한없이 순하고 착한 아이인 로만 알고 있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비극이 잉태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화목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가족이었지만 그랬다. 수 클리볼드는 아이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가 오히려 아이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 고민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아무리 진심으로 내 고민을 함께 걱정해준다 해도 어차피 그 고민은 내 고민이지, 상대의 고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은 상대의 고민이 곧 내 고민이 돼버린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고민을 전가해주지 않기 위해, 그저 나 혼자 괴로운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모든 짐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지켜주고 싶고, 내 어깨에 진 무게를 나눠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내가 잘 알 거라는 착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걸 인정할 때 더 깊은 이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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