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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Apr 23. 2020

가난했기에 행복한 것들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문득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 내가 집에서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쓰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 갑자기 행복해진다. 어렸을 적 내 소원 중 하나가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한 번도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는 그럭저럭 살만한데 겨울이 되면 집에서 샤워는커녕 세수하는 것도 힘들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가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는데, 한겨울에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손을 넣는 건 거의 고문과도 같았다. 다행히 엄마가 부엌에서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여주시면 조심스럽게 잘 갖고 나와 세숫대야에 부은 후 찬물을 적당히 섞어서 세수를 하곤 했다. 그러다 가스통에 있는 LPG 가스가 떨어져 버려 물을 끓일 수 없게 되면 손바닥에 살짝 물을 묻힌 뒤 얼굴에 비비기만 하는 고양이 세수를 대충 하고는 학교로 달려갔다.

 당시 막내 이모는 강남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따뜻한 욕실에 뜨거운 물도 잘 나왔는데, 이모 집에 놀러 가면 난 엄마의 명령으로 무조건 목욕을 해야만 했다. 그 날 아침에 공중목욕탕을 갔다 왔어도 상관없었다.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 왔으니 목욕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나도 제발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 살았으면....... 지금은 이렇게 아무 때고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집에서 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의 간절했던 소원이 이뤄진 셈이다.


 그때 이모 집에 가면 발코니에는 병에 든 음료수가 항상 플라스틱으로 된 상자에 가득 놓여있었다. ‘미린다’라는 이름의 탄산음료였는데 지금의 오렌지맛 환타와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음료수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마시고 싶었는지 모른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밝은 주황빛을 머금은 영롱한 빛깔의 미린다. 아,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음료수가 있을까. 이름까지 뭔가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 음료수를 볼 때마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난 차마 이모한테 그 음료수를 마셔도 되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모는 배려심 깊고 항상 남을 잘 챙겨주시는 분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거기서 귀한 뜨거운 물로 공짜 목욕을 해놓고 음료수까지 달라고 하는 건 너무나 염치가 없는 것 같아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10원 한 푼도 아끼려고 애쓰는 엄마한테 그 음료수를 사달라고도 할 수 없어서 그 아름다운 미린다를 눈으로만 감상한 채 입맛만 다시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 음료수가 얼마나 마시고 싶었던지, 지금도 편의점이나 마트에 갔다가 음료수 코너를 보면 주황색 환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탄산음료를 썩 좋아하지 않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 그걸 마실 때면 어릴 적 그렇게도 애타게 갈망했던 음료수를 이제는 마음껏, 배 터지게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모금 한 모금 넘길 때마다 너무나 행복하다.

 (그 음료수가 항상 상자 채로 이모 집 발코니에 있었던 이유는 얼마 전에야 알게 됐는데, 이모는 집에 우체부 아저씨나, 경비 아저씨가 오시면 드리려고 항상 음료수를 준비해 놓았었다고 한다.)


 마트에 가서 카트를 밀 때도 난 종종 행복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가끔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에 구경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면서 카트를 밀고 다녔는데, 우리는 한 번도 카트를 밀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쇼핑을 잘 안 하셨고, 필요한 생필품은 항상 전통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한 푼이라도 더 깎아서 사셨기에 매끈하게 잘 차려진 매장에서는 살 게 없어서 카트를 밀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바구니 하나만 들고 다니며 눈으로 구경만 하다가 파격 세일 물품을 발견하면 바구니에 넣고, 별다른 세일 품목이 없으면 빈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대로 나오곤 했다. 그때 카트에 물건들을 꽉꽉 채운 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계산대로 향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부자처럼 느껴졌다. 언제쯤 나도 저렇게 멋지게 카트를 밀어볼까. 반질반질한 바닥 위에서 살짝만 밀어도 바퀴가 때굴때굴 굴러가는 카트는 나에게 부(富)의 상징과도 같았다.

 어렸을 때 워낙에 물건을 사지 않던 게 몸에 배서인지 난 지금도 쇼핑에 별 관심이 없고 마트에 가도 물건을 별로 사지 않는다. 구두는 몇 년에 한 번씩 밑창을 갈아서 같은 걸 신고, 옷은 대부분 10년 이상 입고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벨트는 25년째 같은 걸 쓰고 있어서 윤이 반들반들하게 난다. 꼭 돈을 아끼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별로 물건 사는 것에 취미가 없다 보니 똑같은 것을 계속 쓰게 된다. 하지만 마트에 가서 카트를 미는 건 언제나 즐겁다. 마트에 갈 때면 별로 고른 게 없어도 반드시 카트에 싣고 씽씽 달린다.


 샤워꼭지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 하나로, 천 원 한 장이면 살 수 있는 음료수 하나로, 마트에서 미는 카트 하나로 누릴 수 있는 이 행복들은 어린 시절 우리 집이 풍족했다면 지금 결코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가진 것이 많더라도 이런 행복은 모르지 않을까. 어린 시절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면 더 좋은 것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겠지만, 오히려 그때 부유하지 않았기에 나는 지금 더 많은 행복의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큰 걸 얻지 않아도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서 느낄 수 있는 이 행복들은 어린 시절의 가난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세상에 부딪쳐 힘들고 지칠 때 지난 시절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고난이 지금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돼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기본적으로 예전보다 지금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의 여건이 전보다 더 나아졌거나, 설사 나에게 큰 변화가 없더라도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에게 보장해 주는 것들이 많아졌어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어쩌면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장년이 됐을 때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럼에도 그들을 위해 사회가 보장해주는 것이 없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가 없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청년문제가 뉴스를 장식하고, 선거 때가 되면 저마다 청년정책들을 내놓지만 여전히 청년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청년 정책은 더딘 느낌이다. 정책을 연구하고, 만들고, 집행하는 분들이 진심으로 청년 문제를 내 일처럼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청년들이 내일은 분명 더 나을 거라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그 속에서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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