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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un 25. 2020

회사 선배한테서 배우는 사랑

 얼마 전 갑작스럽게 가족 곁을 떠나신 아버지의 빈소에서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 모든 조문객이 떠난 적막한 장례식장 복도에서 누군가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복도로 나가보니 회사의 P선배였다. 함께 왔던 직장동료들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다 돌아갔는데, P선배 혼자 늦은 밤까지 남아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선배, 아직 안 가셨어요?”

 “응, 손님들은 다 가셨어?”

 “그럼요. 늦었는데 안 가고 뭐하고 계세요?”

 “혹시 뭐 필요한 거 없나 해서.......”


 뭐라도 도울 게 없나 해서 밤늦은 시각에 집에도 가지 않고 혼자 조용히 장례식장 안팎을 둘러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선배는 그렇게 빈소의 화환 위치도 보고, 안내 표지판도 확인하고, 장례일정도 챙기며 도울 걸 찾고 있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상조회사에서 다 해주더라고요.”

 “발인 때 운구할 사람은 있고?”

 “친척들이 많아서 걱정할 것 없어요.”

 “그래, 다행이네.”

 “피곤하실 텐데 얼른 가세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셔야 하잖아요.”


 그래도 뭔가 마음에 남아있는 듯 선뜻 문을 나서지 않던 선배는 몇 번을 뒤돌아보며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다음 날 새벽 6시,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뒤 인근의 화장장으로 이동해 아버지 유골을 모실 납골함을 고르고 있는데, 사람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P선배였다.


 “선배, 여기 웬일이에요?”

 “혹시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와봤어.”

 “아유 선배, 이렇게 멀리까지 뭐 하러 오셨어요. 힘들어서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요.”

 “나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새벽부터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장례식장까지 찾아갔던 선배는 발인 시간이 갑자기 30분 당겨지는 바람에 우리를 놓쳤고, 다시 차를 몰아 혼자 화장장까지 찾아온 거였다. “혹시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와봤다”는 선배의 말처럼, 화장장에선 실제로 운구를 하기로 했던 사촌동생이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 자리를 뜨면서 운구할 사람이 한 명 모자라게 됐고, 결국 선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일을 마쳤다. 선배가 없었다면 당혹스러울 상황이었다.

 운구를 마친 선배는 서둘러 출근해야 한다며 밥도 안 먹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이른 새벽부터 멀리까지 오느라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출근하면 하루 종일 힘들고 피곤한 상태로 일해야 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배는 어떻게든 날 위로해주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준 거였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선배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위로가 됐다.


 P선배는 평소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뉴스를 대하는 진심 어린 자세로 인해 직종을 가리지 않고 많은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내가 입사한 지 15년이 지났으니, P선배와 알고 지낸 것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건데,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배는 참 한결같다.

 회사에서 내가 가장 믿고 존경하는 선배이지만 서로 바쁘다 보니 얼굴 마주할 시간이 별로 없다.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것도 아니고, 둘이서 술을 마신 횟수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만나면 언제나 내게 큰 힘을 주는  사람이다. 몇 년 전 단둘이 함께한 술자리에서는 자정을 넘어 간 3차 술자리에서 취한 선배가 내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경호야, 내가 결혼을 해보니, 결혼식 날 챙겨야 할 일들이 정말 많더라. 네 결혼식 때는 내가 운전기사가 돼서 새벽부터 결혼식 끝날 때까지 모든 걸 다 챙겨줄게.”


 참 감동적인 얘기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전화 통화를 했더니, 선배는 황당하게도 3차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랑 약속을 하나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무슨 약속이냐고 되물었다. 선배의 추궁에도 나는 끝까지 약속의 내용을 얘기하지 않았다. 기억이 없어도 선배는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 선배가 약속을 지킬 기회가 없었는데, 결국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선배는 그 약속을 지킨 셈이다.


 몇 년 전 겨울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는데 선배가 입은 패딩 코트가 좋아 보였다.


 “선배, 그 패딩 코트 멋진데요?”

 “넌 패딩 코트 없어?”

 “저는 10년 전에 산 이 코트만 입어요.”

 “겨울에 밖에서 취재하려면 추워서 패딩 코트 하나는 있어야 되는데...”


 며칠 뒤, 선배가 회사에서 잠깐 보자고 전화를 했다. 복도에 나가보니 선배는 자신이 입고 있던 그 패딩 코트를 세탁소에 가져가 드라이클리닝 한 뒤 회사로 가져와서 나에게 건네줬다. 내가 깜짝 놀라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자 선배는 패딩 코트를 던지듯 준 뒤 사라져 버렸고, 결국 난 매년 겨울마다 그 패딩 코트를 입고 취재현장을 누다.


 나도 주변에 아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뭐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P선배가 내게 해 준 것과 비교하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누군가를 챙겨줄 때면 내 나름으로는 한다고 하는데, 마음속에선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해줄 때 상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두 가지 해주고선 내 딴에는 할 건 다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약 상대가 내 맘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P선배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써줄 때 ‘여기까지’라는 게 없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무엇이든 진심으로 해주려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걸 묻지도 않는다. 뭐가 필요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꼭 필요한 걸 알아서 찾아내 해준다. 만약 그래도 필요한 게 보이지 않으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준다.

 나는 그런 선배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조건이 없고, 한계가 없고, 대가가 없는 사랑. 사람들에게 그런 사랑 줄 수 있다면 참 행복한 삶일 것 같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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