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방송기자가 되어 사건 사고의 현장에 나가면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혹시라도 현장에서 내 실수로 중요한 팩트 취재나 결정적인 장면의 촬영을 놓치기라도 하면, 이는 곧 우리 뉴스에서 그것이 누락돼 버리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주요 인물의 인터뷰를 놓치는 것이다. 내 실수로 타사 뉴스에는 다 나가는 인터뷰가 우리 뉴스에만 못 나가는 상황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취재 현장에 나가면 제일 먼저 주요 인물의 인터뷰부터 확보하는 것이 방송기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기자 초년병 시절 나는 사건 현장의 인터뷰를 놓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회부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보도국으로 제보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산후 우울증에 걸린 한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들을 모두 숨지게 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했다가 혼자 살아나 경찰서로 붙잡혀갔다는 것이었다. 빨리 가보라는 선배의 지시에 곧바로 경찰서로 향한 나는 일찍 걸려온 제보전화 덕에 기자들 중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형사과에 들어가 보니 구석에 처참하게 혼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아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굳이 경찰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녀가 바로 내가 찾아온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인터뷰를 시도해야 했다. 해야 할 질문은 뻔했다.
“왜 그러셨어요?”
“지금 심경이 어떠신가요?”
“평소 우울증 치료는 받아오셨나요?”
그런데, 막상 그 여성에게 다가가 얼굴을 보니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참담한 일을 겪은 여인에게 어떻게 질문을 한단 말인가.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상기시키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인터뷰를 한다는 게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경찰의 말을 들으니 그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대개 사건 당시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제정신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벌인 일을 깨닫고 극도의 고통을 겪게 된다고 했다.
정신을 차린 뒤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될 엄마의 심정을 굳이 물어야만 알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경찰에게 이 여성의 인터뷰를 하지 않을 테니 대신 다른 방송사들에도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경찰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며 내 제안에 호응했다. 그렇게 난 경찰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취재한 뒤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아침 6시, 모든 방송사의 아침 뉴스가 일제히 시작됐다. 뉴스 첫머리에는 밤사이 사건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를 제외한 모든 방송사의 뉴스에서 그 어머니의 인터뷰가 생생하게 방송되고 있었다. 기자들의 추궁에 횡설수설 답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마 듣고 있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선배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야! 저거 뭐야! 네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면서 대체 뭘 하고 온 거야!”
내가 인터뷰를 안 한 경위를 설명하자 선배의 화는 더 치솟았다. 나는 현장 취재에 실패한, 기자로서 기본이 안 된 놈이 돼버렸다. 선배가 나를 향해 한 마디를 던졌다.
“무능한 놈!”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담당 형사에게 경위를 물었다. 그는 나와 약속한 대로 하려고 했지만 이후에 찾아온 기자들의 등쌀에 못 이겨 결국 인터뷰를 허락하고 말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기자 초년병 시절 어리바리했던 난 그 사이 숱한 취재 현장을 거치며 어느덧 중견 기자가 됐다. 하지만 16년 전 그 현장으로 다시 가게 된다면 난 이번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실패한 기자가 될 것이다.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기사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제물로 삼아 이룬 성공을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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