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존경하는 직장 후배의 브런치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글에 수십 개의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찬반으로 갈린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평소 따뜻하고 공감 가는 글들로 가득 차 있어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그의 브런치이기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https://brunch.co.kr/@namgizaa/95
내용을 보니 ‘노키즈존’에 대한 글이었다. 춘천에 너무나 좋아하는 단골 카페가 있어 부모님과 일곱 살 아들까지 함께 찾아갔는데, ‘노키즈존’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문전박대를 당한 이야기였다. 혼자 즐겨 찾던 단골 카페를 보여주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던 그가 얼마나 설레는 마음이었을지,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 카페 입장을 거부당했을 때 얼마나 황망하고 속상했을지, 그 마음이 전해져 글을 읽으며 나까지 덩달아 속상해졌다. 더구나 일곱 살 아들이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카페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니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사실 그가 ‘노키즈존’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논란은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노키즈존처럼 찬반의 논리가 명확하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이 있으며, 이미 여러 해 동안 뜨거운 논란이 이어져온 문제도 드물다. 난 개인적으로 노키즈존 설치에 반대한다.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도, 단지 잘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상처를 받은 후배의 사례처럼 죄 없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고,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키즈존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의 처지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게 문제다. 선의로 어린아이를 동반한 손님을 받았다가 아주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자영업자와 직원들은 생각보다 많다. 무례한 아이와 부모로 인해 항의하는 손님들에게 대처하느라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피해 손님에게 자영업자가 대신 보상을 해주고, 이로 인해 손님이 떠나가면서 사업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자영업자라면 모르겠지만,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어렵게 버텨내고 있는 소규모, 혹은 1인 사업체의 자영업자가 자신의 업장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이 문제를 대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던 때의 일이다. 자리에 앉았는데 귓가에 ‘뿅뿅뿅뿅 뿅뿅뿅’하는 게임기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뒷자리에 앉은 꼬마 아이가 손에 게임기를 들고 크게 소리를 켠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내 바로 뒷자리이다 보니 내 귀에다 스피커를 대고 소리를 내지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TV나 동영상 소리라면 그러려니 하고 듣겠는데, ‘뿅뿅뿅뿅 뿅뿅뿅’하는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귀에 꽂히니까 시간이 갈수록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계속 듣고 있다가는 정신병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이 옆에 앉아있는 엄마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면세품 책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에게 주의를 줄까, 아니면 엄마에게 부탁을 할까 하다가 지나가던 승무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승무원이 곧바로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제지해줄 것을 요청하자 엄마가 아이에게 얘기했다.
“소리 좀 줄이자.”
아이가 소리를 줄이는 듯하자 승무원은 자리를 떴다. 하지만 승무원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이는 다시 소리를 키웠다. 시간이 지나자 전보다 더 시끄럽게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엄마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오히려 흐뭇한 얼굴로 게임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승무원에게 얘기할까 했지만 바쁜 승무원을 자꾸 불러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가 않았다. 아이 엄마에게 직접 얘기를 할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포기했다. 승무원이 얘기해도 듣지 않는데 내가 말한다고 통할 것 같지도 않고, 싸움만 날 것 같았다. 결국 난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뿅뿅뿅뿅 뿅뿅뿅’ 소리를 계속 들으며 고문과도 같은 비행을 계속했다.
찜질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친척들과 오랜만에 찜질방에 가서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무너질 듯 쿵쾅쿵쾅 소리가 났다. 눈을 떠서 보니 두 아이가 있는 힘껏 발로 바닥을 치며 뛰어가고 있었다. 바닥이 나무로 된 마루 구조여서 소음은 온 찜질방으로 크게 전해졌고, 잠을 자던 수십 명의 손님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 일어났다. 새벽 시간에 그렇게 큰 소리로 뛰어가는 두 아이 뒤에서는 아빠로 보이는 남성이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 남성의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온 얼굴에 자상한 미소를 머금은 채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제지할 생각이나, 다른 손님들에게 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그렇게 유유히 아이들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잘 자다가 새벽 시간에 갑자기 잠에서 깬 수십 명의 손님들만 황당한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잠은 달아나버렸고, 항의해야 할 상대는 사라져 버렸고, 손님들은 한동안 잠을 못 이룬 채 앉아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소리를 내며 게임을 하고 싶은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찜질방의 넓은 마룻바닥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공공장소에서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하는 일부의 ‘나쁜 부모’들이다. 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이런 일부의 ‘나쁜 부모’가 아이 욕 먹이고, 자영업자 욕 먹이고, 대다수의 멀쩡한 부모들까지 다 욕 먹이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사회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지금의 갈등은 이 같은 소수의 나쁜 부모들로 인해 대다수의 선량한 부모들과 아이들이 힘겨운 자영업자들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갈등의 양측이 모두 이해될 수밖에 없다. 양쪽 다 피해자이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부터 제주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에 눈길이 간다. ‘NO’ 뒤에 ‘아이들’ 대신 ‘나쁜 부모들’을 붙인 것인데, 초점을 불특정 다수의 ‘모든 아이들’에게 맞춘 것이 아니라, 콕 찍어 ‘나쁜 부모들’에게 맞췄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출처: 한국일보 (이상윤 씨 제공)
물론 얼굴만 보고 누가 나쁜 부모인지 알 수가 없으니 입장을 거부당하는 사람은 없다. 현장에서 누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경각심을 주기 위해 준비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나쁜 부모에 의한 몰상식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영업자나 직원들이 당당히 퇴장을 요구할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다. 지금 세상은 ‘부모 하나를 만드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노 배드 패런츠존’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대안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점차 ‘노키즈존’을 대체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갈등의 당사자이자 피해자들이 한 발씩 물러나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선량한 부모들은 일부의 나쁜 부모들로 인해 애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고, 노키즈존 운영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 역시 나쁜 부모들은 일부이며, 대다수의 부모와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줘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일부의 나쁜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켜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노키즈존으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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