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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ul 17. 2020

눈물이 늘어가는 게 꼭 호르몬 때문일까

 몇 달 전 뉴스를 진행하던 생방송 도중이었다. 스튜디오의 카메라 앞에 앉아 다음에 소개할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화면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 숨진 소방관의 영결식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니 모자이크 된 영상 속에 숨진 소방관의 부인과 아이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울컥하면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나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고인의 영정사진 앞에서 그보다 더 젊어 보이는 부인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채 통곡하고 있고, 그 옆에서는 서너 살 밖에 안돼 보이는 어린아이가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부인이 얼마나 원통할지, 나중에 커서 지금 그 자리의 의미를 알게 될 아이가 얼마나 슬프고 애석할지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직 뉴스 진행이 끝난 상태가 아니었기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추슬렀다. 마냥 감정에 젖어있다가는 자칫 방송사고를 낼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날 방송은 아무 탈 없이 잘 마쳤지만, 뉴스 끝낸 뒤에도 한참 동안 마음속에서는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얼마 전엔 경남 통영에서 해상 동굴에 고립된 다이버 두 명을 구하러 바다에 들어간 34살의 해양 경찰관이 다이버들을 모두 구한 뒤 본인은 탈수 증세를 보이다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꼭 살아서 돌아오길 바랐는데, 다음 날 출근해보니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는 기사가 떠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관련 기사들을 찾아 읽다가 “가족으로는 부모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짧은 문장 하나가 가슴에 박혔다. 아마도 아직 미혼 상태로 배우자도, 아이도 없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자식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자랑스러운 자식이 경찰관이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젊은 나이에 가정도 꾸려보지 못한 채 떠난 그 부모님의 마음은 어떨까. 그 한스럽고 원통한 심정이 떠올라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뉴스에서 이 경찰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그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그리고 시청자들이 그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앵커멘트로 “자신을 희생해 시민 두 명의 생명을 구한 경찰관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 하나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은 그 부모님께 털끝만치라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뉴스를 마칠 때까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801853_32524.html


 시간이 갈수록 뉴스로 전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반복되는 아동학대 소식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고, 잔인한 동물학대 영상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돌린다. 특히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 이들의 사연을 전할 때가 유난히 힘들다. 울적한 마음도 들고 때론 눈물도 난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확실히 어렸을 때보다 눈물이 많아진 게 느껴진다. 집에서 TV를 보다가  출연자의 슬픈 얘기에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고, 노래 잘하는 가수의 감동적인 노래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중년 남성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훌쩍대다가 부인한테 구박을 받았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나오는 게 호르몬 얘기다. 남성이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건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기 때문인데, 보통 40대부터 이 호르몬이 감소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게 오직 호르몬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다. 과학적 원리를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호르몬의 영향이 분명히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직, 간접적 경험이 늘어가면서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해가 되고,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것들을 공감할 수 있게 되면서 눈물이 늘어가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지독한 실패를 겪어본 사람은 그것이 주는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실패로 인해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큰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그 상실감이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비슷한 아픔에 놓인 사람의 아픔을 더 잘 위로할 수 있다. 그래서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슬픔에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눈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같이 우는 것의 즐거움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결합시키는 것은 없다.”


 슬픔에 빠진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함께 흘려주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아픔을 가슴 깊이 이해하며 공감한다”는 무언의 위로이며,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진심 어린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호르몬 때문이든, 경험 때문이든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늘어가는 건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줄 수 있기에 우리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아무 때나 몰래 훌쩍거리며 티슈를 찾는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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