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호 Aug 11. 2020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나는 뭘 해도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이다. 술술 풀려서 쉽게 되는 일이 잘 없고, 전전긍긍, 아등바등하며 오만 정성을 다 쏟아야 겨우 성과가 나오는 스타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해도 공 몇 번 툭툭 건드리면 축구든 농구든 제법 모양새를 내는 친구들과 달리,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 연습을 해야 겨우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공부를 해도 남들보다 훨씬 잠을 적게 자고 쉬지도 못하면서 ‘열공’을 해야 겨우 중상위권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요즘도 새로 산 스마트폰은 켤 줄도 몰라 당황하다가 결국은 후배한테 부탁을 해야 하고, 인터넷 사이트 가입할 때마다 쩔쩔매다 보니 나이 차 얼마 안 나는 회사 후배들로부터 ‘아버님’ 혹은 ‘영감님’이라는 놀림을 곤 한다.


 이런 내가 입시와 취업이라고 쉽게 됐을 리가 없다. 대학은 당연히 재수를 했고, 방송기자 공채 시험은 3년 동안 7번 떨어진 뒤 8번째 도전에서 가까스로 합격했다. 말 그대로 7전 8기였다. 지금 하고 있는 뉴스 앵커도 세 번의 오디션 만에 맡게 됐는데, 첫 오디션부터 앵커가 되기까지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보통 뉴스 앵커가 되는 기자들이 입사 5년 차 안팎의 파릇파릇한 시절부터 젊은 얼굴로 뉴스를 진행하기 시작하는데, 난 15년 차에 처음으로 스튜디오에 앉았으니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무엇이든 매번 도전할 때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이제 그만 해야겠다’, ‘포기할 때가 됐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라고 결심한 뒤에야 나에겐 원하던 것이 주어졌다.


 그러다 보니 목표를 이룰 때까지 항상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대학 재수 시절에는 꽃 피는 봄에 친구들이 미팅을 나가고 대학 축제에서 빛나는 젊음을 발산할 때 난 침침한 독서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중학교 때 친구가 요즘 뭐하냐고 물을까 두려워 내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쏟아내다가 허겁지겁 인사를 하고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재수에 실패해 처음 입시 때보다 더 안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들지는 않을까 매일 두렵고 무서웠다. 혹시나 3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고등학교 후배가 대학에서는 선배가 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생각하면 저 땅 속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지금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1년여 동안 지금은 사라진 한 지역 방송사에서 경력을 쌓았는데, 마이너 매체 기자이다 보니 서러운 일이 많았다. 어떤 출입처에서는 메이저 방송사 기자들에게만 출입을 허용해서 나는 기자실에 아예 들어갈 수도 없었고, 겨우 들어가도 지정된 좌석이 없어서 혼자 구석에 서있어야만 했다. 주요 취재원들은 내가 마이너 매체 기자라는 이유로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쓴 단독기사가 얼마 뒤 다른 메이저 언론사의 특종기사로 둔갑해서 보도된 적도 있었다.


 앵커가 되기 전에는 15년 동안 많은 취재부서들을 거쳤다. 가장 힘들다는 사회부를 4번이나 했고,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스포츠취재부, 편집부 등 거의 모든 부서에서 일을 했다. 지금 맡고 있는 뉴스데스크 앵커의 바로 직전에 하던 일은 이 프로그램의 제작 PD였다. 조명과 카메라 워킹으로 앵커를 더 빛나게 하고, CG와 자막 등으로 취재기자들의 리포트가 더 잘 전달되게 하는 게 내 일이었다. 카메라 뒤에서 스태프들을 조율하고 온갖 잡일을 다 챙기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였기에 내 인생에서 앵커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항상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기에 기다림이 끝난 이후 갖게 되는 감사한 마음도 컸다. 외로운 재수 기간을 거친 뒤 맞은 캠퍼스의 낭만은 더 짜릿했다. 서러움 속에 보낸 마이너 매체에서의 1년, 그리고 이어진 백수 기간 1년이 지난 뒤 이룬 취업은 내 일의 고마움을 더 잘 알게했고, 어렵게 얻은 뉴스 진행의 임무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기다림이 힘든 이유는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없이 준비하고  인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내공이 깊어진다는 건 기다림이 주는 선물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더 성숙하며 단단해진다. 공감과 이해심도 더 깊어진다. 어쩌면 뭐든 한 번에 되지 않는 게 더 감사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가 몰래 의사에게 한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