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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Sep 15. 2020

실패는 정말 성공의 어머니일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어떤 도전에서 실패해 좌절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위로의 말이다. 워낙 유명한 말이어서 속담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그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이 한 말이다. 에디슨이 어떤 사람인가. 최초로 전구를 발명하고, 1300건이 넘는 특허를 보유했던 사람이 아닌가. 하나의 발명을 위해 끝없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발명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한 얘기니 그 말의 진정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는다. 정말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일까?


 지겨울 정도로 실패를 많이 경험해본 나로서는 실패했을 때 저 말이 위로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중, 고등학생 시절 나는 ‘공부 잘 못하는 모범생’이었다. 차라리 실컷 놀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 않으련만, 내 나름으로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성적은 계속해서 하향 곡선만을 그렸다. 매 시험마다 받아 드는 ‘실패의 성적표’는 나를 끝없이 좌절하게 했고, 자기 모멸감에 빠지게 했다.

 그런 내가 재수생이 된 건 필연이었다. 재수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열등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어쩌다 한 번 성적이 잘 나온 모의고사 때문이었다. 그 모의고사에는 유독 내가 아는 내용이 많이 나왔고, 찍은 것도 척척 맞아서 성적이 잘 나온 건데도, 한 번 성적 향상을 경험해보니 그 짜릿함이 대단했다. 그 힘으로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고, 결국 나에게 잘 맞는 공부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그 한 번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해서 열등감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취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3년 동안 실패를 거듭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건 “난 해도 안 돼”라는 좌절감뿐이었다. 입사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나를 붙잡아준 건 한 작은 회사에서의 취업 성공 경험이었다. 그 경험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놓지 않게 해 주었다. 돌이켜 보건대, 언제나 실패로 주저앉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수없는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한 번의 작은 성공의 경험이었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난 에디슨이 끝없는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평생 발명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그에게 성공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에디슨이 성공의 경험 없이 계속 실패만 거듭했다면, 그래도 계속 도전할 수 있었을까?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았기에, 어떻게 하면 그 길로 갈 수 있는지를 알았기에 수많은 실패도 그의 길을 막지 못하지 않았을까?

에디슨! 정말 성공의 어머니가 실패인가요?

 우리 회사 보도국에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 중에 ‘특종도 습관이다’라는 말이 있다. 특종도 해본 기자가 계속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입기자가 들어오면 선배들은 그에게 특종 습관을 만들어주려 애를 쓴다. 신입기자 한 명당 전담 교육기자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아주 세세한 것까지 다 관리한다. 여기 가봐라, 저기 가봐라. 이거 물어봤냐, 저건 알아봤냐. 여러 선배가 돌아가며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압박한다.

 신입기자는 정말 괴롭다. 도대체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아, 나는 기자 체질이 아닌가 봐, 적성에 안 맞나 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봐...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면서도 차마 사표는 내지 못해 반쯤 영혼이 나간 얼굴로 꾸역꾸역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듯 작은 단독 취재거리 하나를 찾아낸다. 뉴스에는 나가지도 못할 소소한 이야깃거리 수준이다. 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희열은 실로 대단하다. 고생 끝에 이룬 작은 성공으로 크나큰 기쁨을 맛본다. 그렇게 한 번 성공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취재를 하다 혼자 비슷한 취재거리를 또 찾아낸다. 그렇게 작은 단독 취재를 하나하나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대형 특종을 하는 기자로 성장한다. 그때쯤 되면 더 이상 이 기자에게 매달려 있는 선배는 없다. 어느덧 혼자 힘으로 특종을 할 수 있는 기자가 돼있는 것이다.

 만약 아직 취재가 뭔지도 모르는 신입기자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계속 혼자 실패를 거듭하며 도전하라고 내버려 둔다면 그 기자는 결국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되돌아보면 회사가 분위기가 좋고 성과가 좋을 때는 젊은 기자들에 대한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인재들이 탄생할 때였다. 반대로 이 시스템이 망가졌을 때 회사는 가라앉았다.


 그래서 나는 ‘성공의 어머니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은 것부터 성공해내는 경험을 쌓음으로써 나만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야 성공의 길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가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밭을 만들어주고 물을 줘야 한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만들어주지 않은 채 ‘실패를 두려워말고 도전하라’는 말만 반복하는 건 씨도 안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라는 것과 같다.

 지금은 몇 번 넘어져도 혼자 힘으로 다시 일어나 달려갈 수 있었던 고도 성장기가 아니다. 나이와 세대를 떠나, 누구나 뭘 해도 실패하기 쉬운 게 요즘이다. 더 큰 문제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를 꿈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다시 기대서 일어날 수 있는 지지대이다. 그들에게 성공의 씨앗을 뿌릴 밭 한 뙈기 줄 게 아니라면, 거기에 물 한 통이라도 부어줄 게 아니라면, 함부로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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