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격리자들을 관리하는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들을 만났다. 자가 격리자들을 ‘관리’한다기에, 사무실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이동을 체크하고, 가끔 전화 정도 하는 건 줄 알았더니 실상은 크게 달랐다. 수시로 집 밖으로 나가려는 격리자들의 위험한 외출을 막기 위해, 달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면서 매일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고, 격리자들의 집까지 찾아가 온갖 잡일을 대신 처리해주며 육체노동까지 감당해내고 있었다.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육체노동은 밖에 나갈 수 없는 격리자들 대신 생필품을 사다 주는 거였는데, 이게 참 간단치가 않았다. 삼겹살에 소주를 사서 갖다 달라는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위생 용품을 대신 사다 줬더니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든다며 몇 번씩 다시 사 오게 한 여성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장 볼 품목을 잔뜩 적은 리스트를 내놓았는데,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절대로 주변의 마트에 가면 안 되고, 반드시 멀리 있는 전통시장에 가서 값싸고 싱싱한 재료들을 사 오라는 거였다. 결국 그 공무원은 바쁜 시간을 쪼개 격리자가 요구한 전통시장까지 찾아가서 일일이 장을 봐줘야 했다. 심지어 쓰레기를 치워달라는 요구에 집까지 찾아가 쓰레기들을 갖고 온 적도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공무원인지, 심부름꾼인지, 아니면 하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쉬는 시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에 나갔다 온 어떤 부부는 공항에서 늦은 밤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은 자가 격리할 장소가 없으니 구청이 알아서 장소를 찾아내라고 소동을 피웠다. 결국 저녁 늦게 퇴근했던 공무원은 다시 출근해서 그들이 묵을 숙소를 대신 수소문해 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광복절을 기점으로 확진자들의 폭증과 함께 자가 격리자들도 급증하면서 팀원들은 아예 하루도 못 쉬고 매일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담당 팀장은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였다. 몇 학년인지 물어보니 하필 고3이란다. 아들이 지금 수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자가 격리자들 뒷바라지하느라 아무것도 신경 써줄 수가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공무원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담당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격리자가 말을 안 들어주면 당장 집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 경찰에 고발해서 형사 처벌을 받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쉽게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자가 격리 이탈자들을 고발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들이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코로나가 더 확산되기라도 하면 결국 피해 보는 건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이니, 코로나가 재확산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든 그들이 밖에 나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며칠 뒤에는 상점들의 집합 금지 현장을 점검하는 서울시청 공무원들의 야간 단속 현장을 따라갔다. 수도권은 1주일 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밤 9시 이후 모든 음식점과 주점 등의 영업이 금지돼 있는 상황이다. 실제 단속 현장을 가보니,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영업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단속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단속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고성이 오갔다. “밤길 조심해라”, “도끼로 찍어버리겠다”며 단속 공무원을 위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그렇게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 업무를 보고, 밤에는 현장으로 나가 자정 너머까지 단속하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한 여성 공무원은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얼굴을 보는 게 아침 출근 전 잠깐이 전부라고 했다. 정년퇴임을 넉 달 앞두고 있는 팀장은 남아있는 휴가를 쓰기는커녕 주말도 쉬지 못한 채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일을 처리한 뒤 다음 날 아침 정상 출근하는 고된 일정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현장에서 만나는 자영업자들이 지금 얼마나 위기에 몰려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을 단속하고 고발할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은행 대출에 마이너스통장까지 써가면서 벼랑 끝에서 버티고 있다며, 한 번만 사정을 봐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아주머니를 단속한 공무원은 어두운 골목 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피워 물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럼에도 철저한 단속이 결국 시민들을 위한 길이라며 마음을 다잡고 현장으로 가는 뒷모습에선 책임감을 넘어선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그 밖에도 쨍쨍 내리쬐는 땡볕에서 온 몸에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채 극한의 더위를 참아가며 자가 격리자들을 검사하고 있는 보건소 공무원,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마스크 안 쓴 시민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마스크 착용을 단속하는 시청 공무원 등 코로나 위기 속에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해내고 있었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공무원이 직업 선호도 1위가 된 지 오래다. 청년 취업 준비생의 절반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요즘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직업적 안정성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보니 ‘공무원’이라고 하면 마냥 편하고 한가로운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곳에 투입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다. 물과 공기처럼 꼭 필요하지만 평소 티가 안 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그들의 노고를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종종 공권력을 우습게 알고 당연히 지켜야 할 선 조차 지키지 않거나, 예의를 져버리고 막 대하는 사람들까지 보게 된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는 지금, 많은 공무원들이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국가적인 위기를 힘겹게 헤쳐 나가며 받은 ‘방역 모범국’이라는 찬사 뒤에는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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