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보도국 편집부에 제주도에서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인 당근마켓에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20만 원에 판다는 글이 게시됐다는 내용이었다. 다들 혀를 끌끌 찼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런 장난을 치는 거냐”며, 휴일에 발생하는 여러 사건사고 소식 중 하나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뉴스 시작 한 시간 전인 저녁 7시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 추적 결과, 그 글을 올린 사람은 실제 산모이며, 함께 올라온 사진 속 아기 역시 그 산모가 낳은 아기가 맞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에 편집부가 술렁였다. 몇몇은 끔찍하다고 했고, 또 몇몇은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데스크는 급히 해당 기사의 제목과 자막을 바꿨고, 나도 앵커멘트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마침 해당 사건을 취재 중이던 기자가 있어서 빠르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추가 취재가 진행된 이후에 보도하기로 하고, 당일 뉴스에서는 사건의 개요만 간략하게 전했다.
이후에 전해진 관련 소식들은 더 놀라웠다. 산모는 20대 미혼모로, 아기는 당근마켓에 36주 된 아이라고 적혀있었던 것과 달리 태어난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신생아였다. 경찰 조사에서 산모는 아기 아빠가 없는 상황에서 입양 상담을 받다가 그 절차나 기간이 너무 까다롭고 길어서 홧김에 아이를 판다는 글을 올렸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결국 이 여성은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됐고, 며칠 뒤 아기는 산모와 분리해 보육시설에 입소하게 됐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접하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는 동안 아기 아빠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분명 아기를 세상에 나오게 한 아빠가 있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수많은 관련 기사에서 아빠에 대한 얘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산모는 분명 잘못된 행위를 저지른 것이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아기 아빠에게 어떤 말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지 모르기에, 그 사정을 듣기 전에 무조건 무책임한 아빠라고 단정 지어 비난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산모가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해가며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헤어져 보육시설에 들어간 이 상황에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존재마저 거론되지 않고 있는 아빠에 대한 의문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건 몇 년 전 취재 중 접했던 나쁜 아빠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사회부 기자를 하고 있던 당시, 취재를 아주 잘하는 후배 기자 N이 취재거리 하나를 들고 왔다. 필리핀에 한국인 남성들이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뒤 버리고 떠난 아이들인 ‘코피노’가 2만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현지에 찾아가 실태를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인 사업가와 유학생들이 현지 여성과 사귀면서 아이를 낳은 뒤, 아이 엄마와 아이를 버려둔 채 귀국하는 사례가 늘면서 현지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코피노 어린이 수가 10년 사이 10배로 급증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에서 성매매로 검거된 외국인 중 한국인 남성들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리며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더해졌다.
취재열에 불타는 N의 모습에 나도 뭔가 힘을 보태고 싶어 졌다. N에게 나는 그동안 국내에 남아 한국으로 도망 온 코피노 아빠들의 행적을 추적해보겠다고 했다. N이 그렇게 필리핀으로 떠난 뒤, 난 우선 피해 여성들을 돕는 국내 시민단체를 통해 한국인 아빠들이 필리핀 여성들과 만날 당시 남겨놓은 국내 주소들을 확보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주소지를 찾아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 보니 그중에는 틀린 주소가 많았다. 아예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주소도 있었다. 이들이 애초에 처음 필리핀 여성들을 만날 때부터 책임지지 않고 속일 목적으로 가짜 주소를 알려준 것이었다.
추적 끝에 몇몇 아빠들의 소재가 파악됐다. 집 주변에서 기다리거나 전화번호를 확보해 접촉해 봤다. 역시나 예상대로 반응은 하나같이 뻔뻔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화를 매몰차게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피가 흐르는 자식들을 타국에 그렇게 버려둔 채 어떻게 자신만 잘 살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필리핀 현지 실태를 담은 N의 기사와 함께 이들의 철면피 같은 모습들을 뉴스에 그대로 내보내며 실상을 고발했지만, 보도 이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보도가 나간 뒤 더 화나는 일이 벌어졌다. 뉴스를 본 몇몇 코피노 아빠들이 지인들을 통해 내게 접촉을 해온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혹시 계속 코피노 아빠들을 추적할 계획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혹시나 한국에서 꾸린 가정에 자신의 행적이 알려져서 가정을 유지하는데 위협을 받지는 않을까, 또는 사회에 알려져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지는 않을까를 걱정했다. 단 한 명도 필리핀에 남겨진 자녀 소식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토록 자신의 행복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 때문에 필리핀에서 아빠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은 눈곱만치도 걱정하지 않았다.
Bad Fathers(나쁜 아빠들)라는 단체가 있다. 이혼 후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부모’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아빠들이다. 아빠가 아이들을 나몰라라 하며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아도 현재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장기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렇게 법이 허술하다 보니 민간단체에서 대신 나서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근마켓에 중고물품들과 함께 올라간 아기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삶의 파고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이 아기가 훗날 성장하여 혹시라도 자신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겪은 이 믿기 힘든 일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까. 더 무서운 사실은 당근마켓에 올라오지만 않았을 뿐 이 아이와 별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이번 일이 한 명의 일탈로 치부되지 않기를, 한 번의 해프닝으로 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무책임한 부모들로 인해 아무 죄 없는 아이 혼자 모든 아픔과 고난을 떠안아야 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바란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