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항에 처음 가본 건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당시는 IMF사태가 오기 직전 우리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이루던 때여서 대학교 과사무실에 가면 대기업들이 갖다 놓은 입사지원서가 수북히 쌓여있었고, 대학생들은 적당히 공부하면 졸업할 때쯤에는 웬만한 대기업들은 큰 어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교양 삼아 경영학과의 무역 관련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게시판에 ‘세계 경영’으로 유명한 대우그룹이 이 과목의 수강생들에게 1박 2일로 대우조선소와 대우자동차 등 전국의 대우그룹 공장들을 견학시켜준다고 하니 가고 싶은 사람은 신청하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그 대우그룹이 불과 몇 달 뒤에 IMF로 공중분해가 돼버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공장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려는 찰나, 내 눈을 사로잡는 문구를 발견했으니, 견학생들은 공항에서 대우그룹이 마련해준 ‘비행기를 타고’ 경남 지역에 있는 공장들을 보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던 나는 오직 하나, ‘비행기를 타고’에 꽂혀 그 자리에서 바로 견학을 신청했다.
그렇게 처음 가본 공항은 그야말로 ‘설렘’ 그 자체였다. 공항 벽에 붙어있는 비행기들의 편명과 출발 시각도, 카운터에서 받는 비행기 티켓도 모두가 신기했다. 하나같이 멀끔한 옷을 차려입고 밝은 얼굴로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 멋있어 보이고 번듯해 보였다. 잔뜩 들떠있는 내게 선배 형들은 “비행기 탈 때 벗는 신발을 넣을 신발주머니를 챙겨 왔냐”라고 묻거나, “비행기가 출발할 때는 부릉부릉 하며 가니까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며 놀려댔다. 그때 처음 접했던 깔끔한 공항 로비의 풍경과 상기된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던 여행객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낭만적인 느낌으로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공항을 드나들게 된 건 회사에 들어온 이후였다. 해외에 출장을 갈 때마다 공항을 이용했는데,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건데도 공항만 가면 설레고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 신기한 건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공항을 취재하기 위해 가기만 해도 공항만 가면 마음이 설렌다는 것이었다. 공항 로비를 걷기만 해도 마음이 붕 떠있는 기분이 들고, 출국장에 줄지어 서있는 여행객들의 모습만 봐도 괜히 심장이 콩닥거렸다. 공항에만 가면 어느덧 미지의 세계로 한 발 내디딘 것만 같고, 바다 건너 다른 세상에서 불어오는 색다른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나를 설레게 하는 그대, 인천국제공항
그런 공항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건 몇 년 전 한 뉴스를 본 뒤부터였다. 인천국제공항을 찾는 어르신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가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공항에는 이미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가 형성돼 있었다. 창밖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는데, 거기에 함께 모여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쉬기도 하고, 서로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사람이 그리워서 매일 이곳에 온다는 한 어르신의 말에서 짙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공항이 주는 ‘설렘’이라는 감정은 여전했지만 그 위에 ‘쓸쓸함’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감정 하나가 툭 하니 얹어졌다.
그 어르신들이 공항에서 사라졌다. 어르신들만 사라진 게 아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찾아오던 여행객들도, 출장객들도 모습을 감췄다. 추석을 앞두고 취재를 위해 찾아간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적막감만이 맴돌았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공항에서는 설렘마저 사라졌다.
더 안타까운 건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손님이 사라진 공항에서는 일자리마저 사라졌고, 제일 먼저 그 유탄을 맞은 사람들은 항공사 자회사의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카운터에서 티켓을 끊어주던 사람들, 여행가방을 무사히 비행기로 옮겨주던 사람들, 그리고 비행기 안을 깔끔하게 청소해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설렘을 지켜주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거리에 내앉았다. 기약 없는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거쳐 직장을 잃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지금까지 2000여 명에 이른다. 경영 위기 속에 매각 무산으로 1600여 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실직 위기에 놓인 이스타항공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그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로봇아, 너는 아니? 사람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까?
아쉬운 건 이 과정에서 직원들을 지켜주기 위한 업체들의 노력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실직을 막기 위해 경영 위기에 처한 회사 직원들에 대해 임금의 90%를 지원해주는 ‘고용유지 지원금’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회사들이 나머지 10%조차 부담하지 않겠다며 신청을 하지 않아, 직원들은 몇 달째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공항이 ‘설렘’ 가득한 곳일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이 사라진 공항은 더 이상 공항이 아니다. 공항이 설렘으로 가득할 날이 하루빨리 다시 오기를, 그 날 일터로 돌아간 이들이 다시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