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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Nov 26. 2020

남자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

 내가 다닌 중학교 앞에는 떡볶이 포장마차가 여러 개 줄지어 서있었다. 우리 학교는 원래 여학교였다가 내가 신입생으로 들어갈 때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남학생이 입학하기 시작했는데, 오랜 세월 여학생들만 오간 곳이다 보니 학교 앞에는 여학생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가게들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떡볶이 포장마차였다.

 내가 그 떡볶이 포장마차를 처음 가본 건 우리 중학교를 졸업한 사촌누나를 따라서였다. 누나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사주겠다며 그 포장마차 중 한 곳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곳의 떡볶이는 요즘으로 치면 국물이 많은 ‘국물떡볶이’였다. 누나는 내게 떡볶이 제대로 먹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그곳 떡볶이의 핵심은 떡이 아닌 달걀에 있다고 했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뒤, 숟가락 뒷면으로 노른자를 으깨서 국물과 함께 비벼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나의 가르침대로 떡을 먼저 다 먹은 뒤 남은 떡볶이 국물에 으깨서 먹은 달걀노른자는 그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천상의 맛이었다. 떡볶이를 먹는 모든 과정이 마지막 그 으깬 노른자를 향해 달려가는 긴 여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맛을 본 뒤 떡볶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날 이후 학교 수업이 끝나고 그 포장마차들 앞을 지날 때면 그때 먹은 떡볶이 맛이 떠올라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지만 포장마차에 쉽게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언제나 포장마차 안팎에는 여학생들만 바글바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떡볶이 생각이 나 포장마차 앞에까지 갔다가도 그 많은 여학생들 틈에 혼자 껴서 떡볶이를 먹기가 영 낯부끄러워서 매번 발길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혼자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조용히 구석에 앉아 기다리니 초록색 접시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떡볶이가 나왔다. 짙은 주황빛 국물에 적당히 물든 떡과 어묵, 그리고 그 사이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는 달걀까지, 내가 그토록 먹고 싶던 바로 그 떡볶이였다. 정신없이 떡과 어묵을 먹고 나니 드디어 가장 맛있는 달걀 타임이 찾아왔다. 먼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뒤 정성스럽게 노른자를 으깨기 시작하는데, 밖에서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던 한 여학생이 친구에게 큰 소리로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학생이 무슨 떡볶이야?”


 꼴사납다는 듯 얘기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얼굴이 떡볶이보다 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두 볼이 화끈거리고 이마에서는 땀이 마구 샘솟았다. 남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부끄러움과 포장마차에 있는 모든 여학생들이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창피함에 당장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당황한 나는 그 좋아하는 노른자를 떡볶이 국물 속에 그대로 놓아둔 채 허겁지겁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도망갔다.


 그날 이후 내게 떡볶이는 속으로는 좋아하지만 쉽게 그 마음을 내비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남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물을 때 떡볶이를 말하는 건 왠지 남자답지 못한 것 같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음식을 주문할 때면 조용히 있다가 누군가 떡볶이를 주문하면 신나게 먹었다.

 그러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유능한 남자 선배 한 분과 음식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 선배에게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니 선배가 당당히 얘기했다.


“당연히 떡볶이지!”


 반가운 마음에 나도 떡볶이를 정말 좋아한다고 하니, 선배도 무척 기뻐했다. 떡볶이를 워낙 좋아해서 종종 점심시간에 밥 대신 떡볶이를 먹으러 가곤 하는데, 남자 후배들 중에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항상 여자 후배들과 다녀야 했다며, 앞으로는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그 선배와 나는 점심시간에 함께 택시를 타고 멀리 있는 떡볶이집에 찾아가기도 하고, 서로 자신이 발견한 떡볶이 맛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당당하게 떡볶이를 즐겼다. 그 선배를 만나 내 식탁에서 떡볶이가 해방을 맞은 것이다.


 사람들과 식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음식에 깃들어 있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남자끼리 어떻게 파스타를 먹어?”

“여자가 무슨 번데기탕을 먹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보신탕이나 산낙지를 먹지 못하면 남자답지 못하고, 여자가 밥을 많이 먹으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렇게 일상 속에 깃들어 있는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편견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화시킨다.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각종 차별과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있는 성별 고정관념부터 깨야 하지 않을까.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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