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호 Jul 22. 2021

반려견이 아버지에게 준 뜻밖의 선물

 얼마 전 우리 집 반려견 광복이와 산책을 나갔을 때였다. 한껏 신이 나서 공원을 거닐던 광복이가 갑자기 멀리 있는 벤치에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거기 앉아있는 사람을 향해 맹렬히 뛰어가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분명하기에 목줄을 세게 잡아당겼지만 쉽게 끌려오지 않았다. 평소 산책을 나가면 열심히 여기저기 코를 들이대고 영역 표시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광복이이기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체 왜 이러나 싶어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가슴에 뭔가가 얹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운 날씨에도 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색이 바랜 재킷을 걸친 채 힘겹게 지팡이에 의지해 앉아있는 노인. 영락없는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르신이 놀라실 것 같아 목줄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다시 발걸음을 떼니 광복이는 몇 번이나 그분을 향해 뒤를 돌아보다가 아쉬운 듯 억지로 따라왔다.


 광복이는 7년 전 광복절에 우리 가족에게 온 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꼬박 6년을 껌딱지처럼 아버지와 붙어 지냈다. 집안에서 아버지가 가는 곳마다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다가 밤이 되면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착 붙이고는 잠이 들었다. 내가 여러 번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할 때마다 손사래를 쳤던 아버지는 정작 광복이를 만난 뒤 푹 빠져버렸다. 대학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실 때 자꾸만 집에 가자는 아버지에게 이유를 물으니 “광복이가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셨고, 돌아가시기 전 혼수상태가 되어 더 이상 가족과 대화를 하기 어려워졌을 때에도 잠꼬대처럼 "광복아, 이리 와!"를 되뇌셨다.


 나는 광복이가 우리 집에 온 뒤 아버지와의 대화거리가 부쩍 늘어났고,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전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었기에 광복이를 데려오기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갑자기 광복이의 보호자가 된 나는 아버지에게 광복이의 의미가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광복이와 함께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가자 여기저기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광복이를 왜 할아버지가 산책 안 시켜요?”

 “할아버지 요즘 안 보이시던데 무슨 일 있어요?”


 집 근처 안경점을 들렀더니 그곳 사장님도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매일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셨는데 요즘은 안 지나가셔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9년 전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입주할 당시 아버지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신도시 특성상 동네에 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아버지 연세에 새로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당연히 나는 동네에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일 광복이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다니며 동네를 오가는 많은 이들과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세상과 교류하고 있었다. 처음 대화의 시작은 광복이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제는 점차 동네 이야기,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로  넓어져 갔다. 그들 중에는 젊은 주부들도 있었고, 자영업자들도 있었고, 중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일상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에게 광복이는 노후에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었던 아버지를 세상과 이어준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광복이는 눈에 띄게 우울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현관 앞에 앉아서 이제는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고, 평소 잘하지 않던 소변 실수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광복이가 걱정돼 나는 아버지 대신 매일 산책을 시키고, 밤이면 내 방에서 함께 자게 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광복이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광복이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잊힌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요즘은 내가 출근하고 나면 광복이는 하루 종일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엄마가 하는 것마다 끼어들어 참견하고, 자꾸만 쓰다듬어 달라며 귀찮게 한다.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는 광복이 때문에 종종 웃기도 하고, 슬픔을 잊기도 한다. 아버지를 세상과 이어주던 광복이는 이제는 엄마를 일상으로 이어주고 있다. 그렇게 광복이는 내가 부모님께 미처 하지 못한 아들 노릇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런 광복이에게 나는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복아, 너의 남은 생은 내가 끝까지 지켜줄게. 나보다 먼저 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된다면 거기서도 예전처럼 아버지와 꼭 붙어서 행복하게 지내렴. 고마워.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와 마법의 강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