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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y 06. 2020

아버지와 마법의 강아지

 아버지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신 지 한 달이 다돼간다. 입원하시기 전 집에서 자꾸만 “우리 집에 가자”며 이상증세를 보이시던 아버지는 중환자실 입원 직후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1주일쯤 지난 뒤부터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졌고, 얼마 후 폐렴까지 걸리면서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셨다.

 가족들의 걱정과 불안 속에 병마와 사투를 벌이던 아버지는 다행히 3주가 지나가면서 다시 회복세를 보이며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셨지만, 여전히 묻는 말에 전혀 대답을 하지 않아 가족들의 근심이 커져만 갔다.


 그러던 아버지가 의사소통 기능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아침에 병실에 갔더니 간병인 여사님께서 웬일인지 어머니의 이름을 물으셨다. 어쩐 일인지 여쭤봤더니 밤사이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고 누군가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데 아무래도 어머니의 이름 같더라는 것이다.


 “이름이 뭐였는데요?”

 “광복 씨라고 하더라고요.”

 “광복 씨는 우리 집 강아지예요.”


 내 말에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과 간병인 여사님들도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아무 말 없던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고 밤새 “광복아, 이리 와.” “광복아, 빨리 와”하며 너무도 애타게 이름을 부르기에, ‘광복’이 부인의 이름이라고 추측하며 ‘두 분의 부부애가 참으로 애틋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자 어눌한 말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광... 복... 이는?”

 “광복이 집에 잘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안 계셔서 그런지 평소 같지 않아요.”

 “스트레스... 받아서.... 그럴...거야.......


 그렇게 짧은 대화로 광복이의 안부를 물은 아버지는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3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수술과 후유증으로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에도 아버지는 틈 날 때마다 광복이 안부를 물으셨다.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퇴원하자고 조르셔서 왜 그렇게 퇴원하고 싶은 거냐고 물으니, “광복이가 보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당시 퇴원 직후 기력이 떨어져서 걷지도 못하셨던 아버지는 몇 달 만에 다시 지팡이를 짚고 걷기 시작을 하셨는데,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건강 회복에 광복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다. 한동안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던 아버지 곁에서 항상 광복이가 껌딱지처럼 붙어 앉아 재롱을 피워댔기에 아버지가 장기간의 투병으로 인한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가 다시 병석에서 일어나서 걷겠다는 의지를 갖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도 다시 광복이와 산책을 가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이렇게 강아지를 좋아하신 건 아니었다. 나이 많은 두 부부끼리 사시는 게 적적할 것 같아 내가 수차례 강아지 입양을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아파트에 살면서 집 안에 개를 키우는 게 위생상 좋지 않고, 강아지를 돌볼 겨를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다 5년 전 추석을 앞두고 있던 광복절에 어린 수컷 푸들 한 마리를 입양한 나는 이름을 ‘광복이’라고 짓고 명절 연휴를 맞아 부모님 집에 가면서 광복이를 데려갔다. 부모님 댁에서 사흘 동안 연휴를 보내며 광복이와 함께 머물렀지만 아버지는 광복이를 쳐다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고, 한 번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다.

 명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버지가 서계셨다.


“광복이 데리러 왔다.”


 막상 광복이가 돌아가고 나니, 너무 보고 싶어서 날 밝기만을 기다렸다가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오셨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손에는 광복이를 태워가겠다며 장보기용 미니 카트가 쥐어져 있었다.


 그렇게 광복이가 함께 살기 시작한 뒤, 부모님 집에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루에도 수없이 재롱을 떨어대는 광복이로 인해 집에서는 웃을 일이 많아졌고, 광복이를 화제로 가족 간의 대화도 부쩍 늘어났다. 운동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아버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광복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느라 운동량도 많아졌다. 광복이 하나로 온 집안의 활력이 되살아났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집 밖으로만 돌던 나로서는 나 대신 아들 노릇을 해주는 광복이에게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5년 동안 매일 같이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밤에는 함께 자고 아침에는 함께 일어나던 광복이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뒤 하루 종일 아버지 방의 문 앞에만 앉아 있다. 대소변은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보는 똑똑한 강아지가 자꾸만 집안 여기저기에 용변을 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기약 없이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 어쩌면 머지않은 날에 아버지가 퇴원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반가운 말씀을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퇴원하시는 건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집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이 집을 떠나시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가까스로 입을 열기는 하셨지만 여전히 기억이 오락가락하고, 자꾸만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신다. 하지만 집에는 광복이가 있다. 아버지는 다시 광복이와 자고 광복이와 일어날 것이다. 광복이에게 수없이 말을 걸 것이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줄 것이다. 광복이가 다시 아버지에게 기적 같은 마법을 부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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